2015년 CNN,이케다 다이사쿠 회장, 프란치스코 교황 등과 함께 노벨 평화상 후보로 보도
일본 최대 종교단체인 창가학회 명예회장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선생께서 지난 15일 도쿄 자택에서 향년 95세 일기로 별세했다. 창가학회는 가족 장례식은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치러졌으며, 창가학회 장례식은 23일에 거행하며, 별도의 송별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18일 발표했다.
창가학회(創價學會)는 일본의 승려 니치렌(日蓮, 1222년~1282년)대사가 주창한 불법(佛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하는 불교계열의 종교단체다. 창가학회는 1930년 11월 18일에 창립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국제창가학회’이며 1930년 11월 18일 설립 당시에는 명칭이 창가교육학회였고, 1947년에 창가학회로 변경하였다가 다시 1960년대 초에 국제창가학회(SGI)로 바뀌었다.
창가(創價)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학회(學會는‘ 배우는 모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종합하면 창가학회라는 조직명은 '가치를 창조하고, 배우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창가학회는 불경(佛經) 가운데 가장 으뜸경 (성경:복음서에 비유)이라 알려진 법화경(法華經)즉, 묘법연화경을 (妙法蓮華經)을 신봉(信奉)하는 종교단체이다. 한국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창가학회의 이름을 남묘호렌게쿄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밥화경에 기록된 교훈에 따라 경전의 "첫 글자 부터 마지작 글자까지 한 번에 독행할 수 없을 경우" 등 방편의 예를들어 그들이 수행과정에 봉창(奉唱)하는 기도(祈禱)문 (文)의 발원(發願)인 것이다.
남묘호렌게쿄는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을 일본식 발음인 '나무묘호렌게쿄'(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에서 유래한 것이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앞에 남무(南無)란 ‘귀의’ 한다는 뜻이다. 이에 '나무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는 즉 묘법연화경에 귀의를 표한다는 뜻이다.
창가학회(創價學會)는 마키구치쓰네사부로(1871~1944) 초대회장에 의해 창립되었다. 마키구치쓰네사부로 초대회장은 일본 제국주의(帝國主義)에 맞서 신사참배(神社參拜)와 재앙을 막고 악귀를 쫓기 위해 붉은 글씨나 무늬가 그려진 종이 부적(符籍)지참, 등 거부하고 일본(日本)천황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옥중(獄中)투쟁을 하다가 옥사(獄死)했다.
제 2대 회장인 도다 조세이(1900~1958)역시 초대 회장과 함께 군국주의에 저항하다 2년간 투옥 생활을 했다. 소설 ”인간혁명“에 따르면 도다 조세이는 수감될 당시 85㎏ 였던 몸무게가 출옥할 무렵 50㎏ 이였다고 회고할 만큼 가혹한 감옥생활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묘법연화경의 공명을 지켜온 인물이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선생은 1928년 도쿄 출생하였다. 1947년 창가학회에 가입하여 1960년 제3대 회장이 됐다. 이케다 회장 취임 당시 창가학회는 140만 명에서 827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1964년에는 신공명당을 창당하였다. 1975년에는 창가학회(SGI)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 하였으며, 창가학회는 전 세계 192개 국가 및 지역에서 280만 명에 달할 만큼 해외 선교 활동과 국제 교류에도 힘써왔다.
이케다 회장은 지난날 한국 방문에서 한국 문화의 역사를 장식하는 상징중 하나는 연화(蓮華)라고 강조했다. 연화는 진흙탕에서 물들지 않고, 꽃을 활짝 피우는 것처럼, 세상의 탁류에 물들지 않는 순수(純粹)함, 냉혹한 현실에 지지 않는다. 연화는 사람을 구제하는 자애(慈愛), 고민(苦悶)의 늪에서 지혜(知慧)를 꽃피우는 강인(强忍)함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창가학회의 독경(讀經)인 법화경은 세종대왕께서 그 당시 모든 경전의 근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보물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언해(諺解)권(券)삼(三)(복제,국립중앙박물관 소장)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케다 회장은 “한국은 일본에 문화를 전해준 ‘문화대은(文化大恩)의 나라’”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천 명의 일본 학생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의 잔 다르크로 불리는 여학생 유관순”을 소개하기도 했고,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을 일본의 비열한 침략과 끝까지 싸운 위대한 투사로서 몇 번이나 감옥에 투옥됐다”고 강연할 만큼 그의 옳고 그름에 대한 공명정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외대와 충북대, 경남대 등 국내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계 각국에서 408개의 명예학술 칭호를 받았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의 저자 성철스님은“절간은 불공(佛工)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인간의 가치는 인격에 있는 것이지,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며, ‘나를 만나려거든 3천배(拜)를 하라”는 일화는 “나를 찾아와봐야 아무런 이익이 없으니 부처님을 찾으라”는 뜻이었다. 자신에 대한 염려에 앞서 남을 염려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릴 때, 인간은 비로소 성숙해질 수 있다. 우리불교는 일본 불교학(佛敎學)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다. 다만 불도 수행에 있어 참선(參禪)과 견성(見性)은 동일시 해야 하며, 결코 분리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셨다.
세계 인류가 근접하는 경전가운데, 성경(聖經)을 빼놓을 수 없다, 성경을 신봉하는 신앙인이 지켜야할 십계명(十誡命)이 있다. 그 첫 번째 계명은 ”우상숭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탐심(貪心)을 버리라'는 뜻이다. 성경(聖經)은 “부자(富者)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가르치며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수가 없고 성경 말씀에 따라 실천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며 교훈하였다. 천국이란 입술로 백날을 염원해봐야 소용없으니 이웃사랑의 행함을 실천 하라는 뜻이다.
불경(佛經)과 성경(聖經)의 가르침을 나열하여 서로 비추어 보면,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마라, 인내심이 부족하여 성내지 마라. 부질없는 생각에서 어리석지마라, 이 세가지를 불교에선 탐,진,치(貪,瞋,痴) 즉, 삼독(三毒)이라한다. 불경과 성경의 가르침은 삼독에 빠진 중생들의 질고(疾苦)를 긍휼히 여기사 중생구제를 위하여 다양한 비유와 방편을 들어가며 교훈하고, 아둔하고 의심많은 중생을 이해시키며 제도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헤아릴 수 있다.
특히 대승경전의 묘법연화경 28품과 신약성경의 27권에 기록된 말씀을 펼쳐 살펴보면, 석가모니의 출생과 열반이후 재출현 할 때, 예수님의 출생과 최후와 재출현 할 때에 일어나는 각각 현상이 서로 대조돌 만큼 상이할 뿐, 두 경전에서 대중들을 모아놓고 "산상설법(山上說法)과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교훈하는 가르침을 정리하면 세상만사 모든 현상은 자연의 순리에 따른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이치와 “사랑과 자비” 가 곧 인간 근본 자세의 진리임을 가르침으로로서 두 경전의 가르침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바가 매우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사후(死後)세계의 극락(極樂)과 천국(天國)에 대한 논점은 각각 종파(宗派)마다 견해(見解)가 다르므로 차후로 미루고 거론하지 않겠다.
그렇다면 종교지도자 수십만명이 행세하는 우리 사회는 불경(佛經)을 가르치는 중생이나, 성경(聖經)을 가르치는 중생은 저마다 몸과 마음을 닦아낸 수신(修身)과 같은자아성찰(自我省察)을 넘어 혁신자(革新者) 의 정신 즉, 인간혁명(人間革命)을 성취한 자들만의 꾸밈 없는 박애(博愛)정신이 이 땅에 넘쳐나야 할 것이며, 그 나라는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평화로운 사회로 안착해야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타락하여 재물과 명예의 탐욕에 물들어 썩어가는 사회로 잠식될 경우, 그 나라는 이미 망국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짐작할 것이기에 의심에 여지조차 없다.
지난 역사와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더라도 창가학회는 지난날 몰락하던 일본 사회를 바로잡기 위하여 애쓰며 지금껏 지탱해온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창가학회는 일본의 군국주의화에 초지일관 반대 입장을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묘법연화경에서 가르치는 평화주의 사상과 정법사회를 위해 노력함과 아울러 특히 이케다 회장은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이에 일본 일부 세력으로부터 비판적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창가학회 이케다 회장은 인류의 희망을 위한 광선유포(光宣流布)에 헌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이케다 회장은 주은래(周恩來) 중국 총리,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등 세계 각국의 고위 인사들을 만나 평화적인 외교를 펼쳤다. 그는 1983년 유엔 평화상과 평화훈장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미국 CNN 방송은 이프란치스코 교황 등과 함께 이케다 다이사쿠 회장을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보도한바 있다.
그는 1979년 명예회장이 된 이후에도 계속 회장직을 맡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편 이케다 회장 사망 소식을 접한 일본 사회전문가들은 창가학회가 회원의 고령화에 의해 조직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점을 염려하는 가운데, 창가학회를 지지하는 일본정부연합여당 공명당은 당 창시자의 카리스마가 사라진 데다 조직의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는 점과 아울러앞으로 일본 사회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인류에 큰 족적을 남긴 이케다 회장의 명복을 기원 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