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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法華經)과 인간혁명(人間革命)"-창가학회-공명당-일련정종-(영화-소설)자료.(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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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세 (金益銖) 2023. 10. 26.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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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혁명이란 소설(小說)은   법화경(法華經)의 참된 가르침을 통해서 인생을 살아감에 세상살이 옳고, 그름의 분별함을 배우고  삶의 이치(理致)를 깨우치는 길에 들어서며  고난과 연단의 시련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승리자의 경지에 이른 '도다 조세이'의 일생을 엮은 회고록이다. 필자는 소설 인간혁명을 통해 깊은  자아성찰과 자아혁신을 통털어 인간혁명이라 한다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때 마침 소설 인간혁명을 영화로 제작하고 권(卷)과 문단(文段) 별로 나누어 영상소설을 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래 본문에 나오는 '도다 조세이' 창가학회(創價學會)2대 회장은  일본(日本) 군국주의(軍國主義)에 맞서 싸우며 , 종단의 부정부패(不正腐敗)타락한 승려(僧侶)들의 일탈행위(逸脫行爲) 에 앞장서서 종교개혁(改革)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에 유익한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여러분께 소개 하고자 한다.

 

일련정종(日蓮 )은 가마쿠라 시대 중기에 승려 니치렌이 창시했다. 천태종과 같이 대승경전의 하나인 법화경(法華經)을 신봉(信奉)하며 성불(成佛)의 길을 가르친다.

 

도다 조세이(일본어: 戸田城聖, )1900년 2월 11일 ~ 1958년 4월 2일)는 이시카와현에서 태어났다. 창가학회의 제2대 회장이다. 본명은 도다 조가이(戶田城外).

 

홋카이도에서 교사 생활을 보내고 도쿄로 상경해 교사로 생활하던중 교육자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를 만나 제자가 되었다. 이후 1928년에 스승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함께 니치렌 불법에 입신하였다.

 

당시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자신의 교육 이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편린의 메모를 해왔는데 그 양이 상당하였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그것을 하나의 논문으로 발간하고 싶었으나, 원고자체가 종이가 부족한 시절에 쪽지, 이면지 등에 작성해 왔기에 편집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에 제자 도다 조세이가 스승의 원을 실현하고자 직접 원고를 편집하고, 자비로 '창가교육학체계'를 발간한다. 창가교육학체계 발간일인 1930년 11월 18일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교육자를 중심으로 창가교육학회를 설립하였다.

 

1930년 창가교육학회는 '대선생활'실험증명 좌담회를 실시한다. 일반 가정집에 모여 각자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철학을 실천한 후 그것이 현실에서의 체험을 서로 교류하는 회합이었고 현재 SGI의 좌담회의 시초가 된다. '대선생활'이란 크게 선을 베푸는 것을 말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니치렌 불법을 믿게 하여 행복하게 인도(절복) 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했다.

 

1942년 6월 일본 제국주의 국가신도 체제는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며 국민 총동원과 더불어 사상통일정책을 통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한다. 이 여파는 창가교육학회에도 미치게 된다.

 

국가의 탄압에 일련종 승려측은 신도단체인  창가교육학회측에 신찰을 받으라고 강요했지만 창가교육학회 초대회장 마키쿠치 쓰네사부로는 그 자리에서 단호히 거부하였다.

 

신찰 이란...? : 신찰(神札, 일본어 발음: 가미후다)이란 용어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말이다. 천조대신이라고 하는 일본의 국신을 나타낸 부적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자 그대로 신()''을 의미하고, '''종이조각'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선 일종의 부적을 의미한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회장은 "신찰을 받는 것은 한 종파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가가 망하는 길이다"라며 신찰을 거부하고 일련종으로 부터 등산 및 참배 거부 징계를 받는다.

 

그 이후 군부정부 특별고등경찰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마키쿠치와, 도다 조세이를 비롯한 창가교육학회는 니치렌 불법의 정의를 주장하며 좌담회를 계속했고 1943년 7월에 불경죄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후 군국주의 정부의 일방적 불평등 취조와 불합리한 재판으로 계속 감옥생활을 했으며 검사의 취조가 있을 때 조차도 니치렌 불법의 정의를 굽히지 않았다. 계속되는 취조와 부실한 영양, 노쇠한 체력으로 마키구치 쓰네사부로 회장은 1944년 11월 18일 감옥에서 순교했다. 나중에 도다 조세이는 이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1943년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이사장 도다 조세이가 구속될 당시 21명의 간부들도 같이 감옥에 가지만, 모두 신앙을 포기하고 석방된다. 오직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도다 조세이 두 명만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다 조세이는 1944년 1월부터 법화경(法華經)독파를 결심하고 그 해 봄 무렵 불가사의한 옥중 오달을 하고 난해한 법화경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후 한 번 더 불가사의한 체험을 통해 생애동안 이루어야 할 사명을 자각했다.

 

1945년 7월3일 태평양 전쟁의 패색이 짙어진 즈음 도다 조세이 혼자 살아서 출옥하였고 창가학회 재건에 온 정열을 쏟는다. 본인이 옥중에서 깨달은 법화경 강의를 시작했는데 거듭되는 강의를 하는 도중 1947년 8월에 운명의 제자 이케다 다이사쿠를 만난다.

 

이후 이케다 다이사쿠를 훈도하며 제2대 창가학회 회장에 취임하였고 취임식에서 약속한 75만세대 포교의 위업을 달성한다.

 

1957년 9월 8일에는 창가학회의 평화 운동에 관한 원리를 명시한 지구민족주의의 이념과 원수폭금지선언을 제창하였다. 1958년 3월 다이세키사에 대객전 낙경식을 계기로 광선유포 후계의 기념식을 3월16일에 치르고 1958년 4월 2일에 58세의 나이로 서거하였다.

도다 조세이선생님과  이케다 아디사쿠 창가학회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는 1928년 1월 2일 일본 도쿄에서 양식업을 하는 집안에서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0년 소학교 졸업 후 자신의 형이 근무하던 니가타 철공소에 취직했고, 이 시기에 자신의 형 4명이 모두 일본군으로 징병되었고, 이중 맏형은 전사했다고 한다.자신은 이 시기에 늑막염에 걸려 결핵 요양소에 입원을 기다리던 중 종전을 맞이했다고 한다.

 

1947년, 19세의 나이에 당시 창가학회 제2대 회장이던 도다 조세이를 만났고, 도다 조세이의 명확한 불법철학 강연과 그의 성실한 인격에 매료되어 창가학회에 입교했다. 이케다 다이사쿠는 도다 조세이를 평생의 스승으로 모셨다고 한다.[3]

 

1960년 5월, 32세의 나이에 창가학회 제3대 회장에 취임했으며, 1975년에는 창가학회의 국제조직인 국제창가학회를 설립하고 회장에 취임했다.

 

1979년 일련정종과의 분쟁으로 인해 창가학회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국제창가학회 회장직은 아직까지 유지중이다

창가학회(創價學會)

일본의 승려 니치렌(日蓮, 1222년~1282년)[2]이 주창한 불법(仏法)을 신앙의 근간으로 하는 불교계열의 신흥종교단체다.

1930년 11월 18일에 창립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국제창가학회, 영명은 SGI(Soka Gakkai International)다. 1930년 11월 18일 설립 당시에는 명칭이 창가교육학회였고, 1947년에 창가학회로, 다시 1960년대 초에 국제창가학회(SGI)로 바뀌었다.

 

창가(創價, Soka)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학회(學會, Gakkai)는 배우는 모임이라는 의미. 결국 종합하면 창가학회라는 조직명은 '가치를 창조하고, 배우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그들이 수행으로써 부르는 일종의 기도문이며,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을 남묘호렌게쿄라고 오해하지만 이는 정식 명칭이 아니다.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なむみょうほうれんげきょう)의 일본식 발음인 '나무묘호렌게쿄'에서 유래한 것으로 묘법연화경에 '귀의'한다는 의미다.

 

창가학회는 처음엔 종교단체가 아니라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라는 교육자들의 모임이었다. 창가(創價)란 '가치를 창조한다'는 뜻으로,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牧口常三郞, 1871~1944)가 가진 교육 철학이 가치창조였다.

 

창가교육학회의 회원은 모두 각자 자신의 현장에서 마키구치의 창가교육을 실험하고 검증하며 교육이론을 더욱 발전시켰다.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자신의 독창적인 교육이론을 자신의 애제자 도다 조세이(戸田城聖)와 함께 체계화하여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출판한 책이 바로 '창가교육학체계'이며 이 책의 발간일인 '1930년 11월 18일'을 훗날 창가교육학회의 창립일로 정했다.

 

그런데 창가교육학체계가 발간되기 전인 1928년, 마키구치와 도다는 함께 니치렌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이는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의 '가치론'과 '가치 창조'라는 교육이념이 니치렌 불법 사상과 매우 깊이 공명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적을 '아이들의 행복'에 두고 교육 이론을 전개하여 만들어진 창가교육은 '만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법화경 철학과 매우 닮은 점이 많았다. 마키구치는 환갑에 이르러 고민 끝에 니치렌 불법에 귀의하게 된다. 이때부터 창가교육학회는 창가교육의 근저에 니치렌 불법의 사상과 수행을 두었다.

 

1947년에 도다 조세이가 조직을 창가학회로 개명한 후에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는 종교단체로 거듭나게 된다. 도다는 20세기 초 앙리 베르그송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떠오르던 생명주의를 통해 니치렌 불법을 이해하려 했고, '법신불(法身佛)은 곧 생명 그 자체'라고 보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붓다는 생명력 그 자체이며, 현세의 이익을 실현시켜 준다. 이로 인해 창가학회는 불교계 단체 중에서도 유독 현세구복적이고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282년의 니치렌의 죽음 이후 니치렌 선사의 주장을 따르는 일련종(日蓮宗)이 생겨났다. 일련종의 수십가지 분파 중 하나가 일련정종(日蓮正宗)이다. 일련정종은 후지산에 위치한 대석사(大石寺)를 거점으로 하는, 니치렌이 직접 정한 본제자 여섯 명중에서 닛코(日興)가 세운 종파이다.

 

이 일련종과 일련정종 대석사(다이세키사)의 창건까지의 경위를 대략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282년 10월 13일 니치렌은 부슈의 이케가미에서 생을 마쳤다. 당초, 니치렌 대선사의 묘소는 본제자 6명을 비롯하여 총 18명이 매달 교대로 지키는 윤번제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윤번제는 지켜지지 않았고, 이미 3회기 무렵이 되자 닛코를 제외한 나머지 17명은 모두 찾아오지 않았다.

 

닛코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지두나 가마쿠라 막부 관리와 영합하여 자신을 천태사문이라 칭하고 니치렌 대선사의 글을 불태우거나, 물에 빠뜨려 지워버리는 폭거를 저질렀다. 결국 닛코는 일련종의 타락을 우려하여 니치렌의 저작을 전부 모아 미노부를 떠났고, 후지산 일대에 일련정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대석사(다이세키사)를 짓는다.

 

그렇게 일련종에서 일련정종으로 떨어져 나옴으로써 종교의 타락을 막는가 싶었지만, 제3대 법주인 니치모쿠(日目)의 죽음 이후 600여 년간 일련정종 또한 본래 미혼이어야 할 법주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고, 신도들에게 의식을 강요하여 돈을 빼앗는 등 종교적인 부패가 진행되어왔다.

 

그중에서 특필할 만한 사건이 바로 20세기 일본의 군국주의에 의하여 국가신토라는 사상 초유의 사상통일정책에 굴복하여 신찰을 허용하려 했던 일이다. 일제 군국주의 시절에 일본 정부가 신토(국가신토) 중심의 사상 통일과 종교 통일을 추진하자 이에 겁먹은 일련정종의 승려들은 '신도의 천조태신은 근본이고, 부처는 그림자'라는 주장의 신본불적론(神本佛迹論) 등의 주장을 하여 이에 반하는 어서(御書) 중 14곳을 스스로 삭제하는 추태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당시(1940년대 초) 재가 조직(창가교육학회)의 초대 회장 마키구치 쓰네사부로와 그 제자인 도다 조세이는 니치렌 불법의 사상에 따라 신념을 굽히지 않고 이에 철저히 저항하며 신찰을 거부했다. 따라서 '치안유지법 위반'이라는 혐의와 천황에 대한 '불경죄'라는 두 가지 명목으로 투옥(1943년 7월 경)되었고, 마키구치 쓰네사부로는 투옥 약 1년 4개월 후, 1944년 11월 18일[17]에 옥사했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7월 3일에 혼자 병약한 몸으로출옥한 도다 조세이는 창가교육학회를 '창가학회'라고 이름하였다. 그 후 도다 조세이는 1958년 임종까지 단 10년 동안 80만 명에 이르는 조직으로 발전시켜 종교 단체의 기반을 다졌다. 그 뒤를 이은 제3대 회장 이케다 다이사쿠 이후 창가학회는 더욱 급속히 성장하여 일본에서만 1000만이 넘는 인구가 신앙하는 거대 종교 단체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일련정종에서는 1979년 66대 법주가 의문스럽게 죽고 난 이후 66대 법주의 유언장에서 자신을 법주로 하라고 했다고 주장하는 닛켄이 그 증거인 유언장조차 보이지 않고 67대 법주 자리를 탈환한다. 그리고 돌연 회장이었던 이케다 다이사쿠를 파문하고 회원들을 만나는 것을 금지한다.

 

승려는 위, 재가신도들은 아래라는 오만한 사고방식을 깨지 못한 닛켄은 신도들이 자신을 숭배하기보다 오히려 일개 재가신도에 불과한 이케다 다이사쿠를 창가학회의 지도자로서 존경하자 그를 질투한 것이다. 게다가 창가학회 회원들에게도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이케다처럼 파문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하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창가학회 회원들은 그 일을 계기로 일련정종과 연을 끊어 창가학회가 독립된 단체가 되었다. 일본의 패전 이후 국가신토에 의해 초토화되었던 일련정종은 한때 창가학회 회원들의 기증으로 전쟁 전의 수십 배 수준으로 급속히 번영했지만 이 파문사건 이후 창가학회와 단절되고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창가학회(創價學會)는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싸운 종교단체로 유명하다.

공명당(公明党)

1961년 공명정치연맹(公明政治連盟)이란 이름으로 창립하고, 1964년, 공명당(公明党)이라는 명칭으로 창당되었다가, 1995년 신진당에 참여하기 위해 당을 공명신당(公明新党)과 공명(公明)으로 쪼개어, 공명신당에 각각 95년과 96년에 선거를 치뤄야 하는 중의원 의원들과 참의원 의원들을 보내 먼저 신진당과 합당시키고, 공명에는 96년에 선거를 치루지 않는 참의원 의원들과 지방의원들을 보내어 공명당 세력이 둘로 나눠져 이중적인 구조가 되었다.

그런데 96년 열린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신진당이 패배하고 공명당 출신 의원들은 탈당하여 참의원 의원들은 여명클럽(黎明クラブ)을, 중의원 의원들은 신당평화(新党平和)를 결성하고, 1998년 여명클럽이 공명에 합당하고, 곧바로 신당평화가 공명과 합당하면서 신 공명당(公明党)를 재결성하게 되었다.

 

창가학회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 색채가 강한 정당으로, 일종의 불교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현재는 과거와 달리 표면적으론 창가학회와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라고 주장하나, 다수의 인식은 여전히 공명당에 대한 창가학회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명당은 일본의 정당이다. 자민당과 공조해 정권을 이끌고 있는 연립여당이기도 하다.

일련정종(日蓮宗)

일련정종(일본어: 日蓮正宗 니치렌 쇼슈[*])은 니치렌을 종조로 하며 직제자를 닛코상인으로 하는 불교이다. 일본의 니치렌 계열의 여러 종파 중에서 니치렌 본불론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 중에서 후지문류 즉 닛코상인을 파조(派祖)로 하는 닛코팔본산(興門八本山) 중에서는 총본산인 다이세키사 그리고 본산인 묘렌사, 역시 본산인 사누키본문사 등의 3개 본산이 여기에 속해있다.

역사적으로는 종조인 니치렌의 입적 후, 닛코상인이 총본산 다이세키사를 건립하여 총본산의 개조가 되었으며, 그 교의적 방향성을 결정지었다. 7년 뒤 지역의 유력자였던 이시가와(石川)씨의 외호로 거처를 오모스담소(重須談所)로 옮겨 만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그리고 제자인 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에게 혈맥을 물려준 뒤 오모스담소에서 제자의 육성, 지도에 힘을 쏟고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일련정종(日蓮正宗)이라고 종명을 붙이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그때는 다이세키사파(大石寺派) 한때는 후지문류의 각 본산과 연합하여 이후 일련본문종 시대에서는 8본산에서 호선으로 관장을 지내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종조로부터의 혈맥의 호지 계승이 외호받기 어려웠고 이 때문에 대석사의 본산과 말사들이 모두 일본 정부에 독립을 신청하여 이것이 곧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다.

 

1912년에는 일련정종으로 정식으로 개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법화경의 정종분(正宗分)의 해석에서 니치렌을 말법의 본불로 이끌어내는 교의는 일련정종에서 정해지는 교상판별법으로 때문에 이미 18세기 초반(말법시대 초)부터 자신의 종파를 정종(正宗)으로 명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가나자와(金沢) 향토사의 문헌인 「정종의 제목」이라는 고 문헌에서 그 증거가 확인되어 있다.

일련정종의 교의

1279년 10월 12일에 종조인 니치렌이 도현한 본문계단(本門戒壇)의 대어본존(大御本尊) (현재는 총본산 다이세키지(大石寺) 봉안당(奉安堂)에 안치되어 있음) 을 귀명의지의 대상인 본존(本尊)으로 정하며, 종조 출세의 본회(本懐)로 구경(究境)인 대만다라로 자리하고 있다.또한 일련정종에서 말하는 독자적인 교의 내용으로서 두드러지는 것은 이것이다.

1.종조인 니치렌은 외용으로서는 법화경에 예언되어 있는 말법의 세상을 구제할 상행보살이며, 그 내증에서는 구원원초(久遠元初)의 자수용보신(自受用報身)의 재탄, 즉 본불이다. 그래서 종조를 니치렌대성인으로 칭한다.

 

2.종조는 1253년 3월 28일에 입종을 내시하였고 4월 28일에 입종을 선언하였다.

 

3.닛코상인은 1282년에 이개상승에 근거하여 종조로부터 유수일인의 혈맥상승을 받았다. 제3조 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제4조 니치도상인(日道上人),제5세 니치교상인(日行上人)으로 차례대로 전해져 현재의 법주는 제68세 상인으로 계신다.

 

현재 소의경전(所依経典)으로서는 법화삼부경(法華三部経), 종조의 유문(遺文) (이를 어서(御書)라 칭한다.), 제2조 닛코상인의 유문(遺文), 제9세 니치우상인의 유문(遺文), 제26세 니치칸상인의 유문을 정의로 하며, 천태종 계통의 천태삼부(天台三部)인 마하지관(摩詞止観) 10권, 그리고 마하지관 홍결(弘決), 법화현의(法華玄義) 10권과 법화현의 석첨(釈籤), 법화문구(法華文句) 10권과 법화문구기를 방의(傍依)로 하여 인정하고 있다.

 

신앙의 기본이 되는 삼보(三寶)는 첫째, 종조(宗祖)를 구원원초(久遠元初)의 불보로 하고 둘째, 남묘호렝게쿄(南無妙法蓮華経)의 본문계단의 대어본존님을 법보로 하며 셋째, 혈맥부법(血脈付法)의 시초인 제2조 닛코상인(日興上人)을 으뜸으로 하여 역대의 법주(法主)를 승보로 삼고 있다. 종조인 니치렌대성인이 곧 「본인묘(本因妙)의 교주석존(教主釈尊)」이며 인도에서 탄생한 석가모니 세존(석존)은 법화경을 설하여 당시의 중생을 구제하는 한편 말법에서 참된 본불의 출현을 예언 증명하기 위해 출현한 방편의 모습인 것이다.

 

 

 

니치렌 대사 - 불교를 통해 사회와 국가를 구원하려고 헌신하였다.

 

출   생 : 1222

사   망 : 1282

국   적 : 일본

대표작: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개목초(開目秒), 찬시초(撰時抄), 보은초(報恩抄)

 

니치렌은 법화경을 기반으로 한 법화불교를 주창한 일련정종의 창시자, 오늘날까지 일본 종교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 일본은 삼론(三論), 법상(法相), 화엄, (), 성실(成實), 구사(俱舍), 천태(天台), 진언(眞言), (), 정토(淨土), (), () 등 열두 종파가 각기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13세기는 불교가 최고로 번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느 때보다 불교가 발전하고 확산된 시기였다.

니치렌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여러 종파를 연구한 끝에 법화경의 가르침만이 진정한 교리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는 "법화경이야말로 정법이며, 정법을 비방하는 염불의 신심을 버려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타 종교를 배척하는 과격한 주장을 펴 유배와 피습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다.

 

니치렌은 1222년 아와국(치바 현 아와 군)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열두 살 무렵 고향의 세이쵸지(淸澄寺)로 출가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 평민이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출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도젠(道善) 아래에서 불법을 배우고 수행했으며, 4년 후 정식 승려가 되어 '렌쵸(蓮長)'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가마쿠라, 교토, 히헤이 산 등지의 사찰에서 수행하면서 밀교, 천태종, 선종, 염불종 등 다양한 종파를 연구했다.

 

당시 일본 불교는 종파가 구분되어 있었다 해도 교리 면에서 서로 뒤섞여 있고, 단지 제도적 측면에서 분파되어 있는 경향이 컸다. 천태종이라 해도 여러 종파의 교리가 혼합되어 있었던데다 의례적인 부분에서는 진언종의 영향을 받는 등 다양한 성격이 혼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니치렌은 이런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 "각 종파들은 다른 모든 종파를 비난하고, 자신만이 불교의 근간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에 두 개의 길이 있을 리 없다. 그럼 이 같은 종파의 분열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과연 내가 좇아야 할 부처의 길은 무엇일까?"

 

그는 각 종파들이 부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런 잘못된 신앙 때문에 사회적 불안이 야기되고 있다고 여겼다.

 

특히 그의 눈에는 승복을 걸친 채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고, 승려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으며, 미신적 주술로 민중들을 현혹하고, 교단 내외에서 정치 싸움을 일삼는 승려들의 모습이 기이하게 보였다.

 

그는 석가모니의 설법이 가르치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어 분파된 불교 종파들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궁극적인 가르침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오랜 배움 끝에 천태종의 최고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을 신봉하게 되었다.

 

니치렌의 《법화경》

1253년 고향으로 돌아간 니치렌은 자신만의 종파를 개창하고 거리에서 설법을 시작했다. 그는 다른 모든 종파의 교리를 부정하고, 그것이 민중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다른 교리들은 법화경에 담긴 부처의 궁극적인 가르침에 도달하기 위한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법화를 정법(正法)로 여기고, 이 법을 세움으로써 다른 종파들을 제거하고 사회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고 여겼다. 천재지변, 기근, 전염병 등이 횡행하는 것 역시 바른 법(正法)인 법화경을 소홀히 하고 잘못된 믿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름을 '니치렌(日蓮)'이라고 개명했는데, 니치(, 태양)는 근본을 의미하며, (, 연꽃)은 법화경을 지칭한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법을 수행하면 부처로 거듭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 수행법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부처나 보살의 이름을 만다라로 그려 불공을 올리고, 태양이 떠오르는 방향을 향해 '나무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법화경에 귀의한다)'라는 진언(眞言)을 정성껏 외는 것이었다.

 

또한 그는 불교가 단순한 참선이나 개인적인 구원에 그쳐서는 안 되며 사회와 국가, 세계를 구원하는 데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세속적인 제도와 법률, 정치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현대 일본의 많은 불교 분파들은 그의 교리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니치렌 종단의 한 분파인 창가학회(創價學會)가 공명당(公明黨)을 창립하여 정계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이런 입장이 주효했다.

《입정안국론》

그는 다른 종파를 모두 배격하고, 적극적인 포교 방식을 취했다. 그의 포교법은 '파절굴복(破折屈伏)'이다. 이는 상대방이 잘못된 생각이나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분명히 깨우쳐 주고, 바른 것을 바르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상대를 개종시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리 설법만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불법을 전수하고, 나아가 다른 종파의 사찰에까지 찾아가 포교 활동을 했다.

그의 과격한 포교 방식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다른 종파의 반발을 불러왔다. 때문에 그는 다른 종단은 물론, 지역 영주들에게도 박해를 받으며 평생 유배와 추방을 거듭 당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민간에서 널리 믿고 있던 염불 신앙을 비판하는 바람에 거리에서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유배되는 니치렌

니치렌이 사도 섬으로 유배를 가게 되자 훗날 일련정종의 2대 교조가 되는 제자 니치로가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서다 제지당하는 순간을 묘사했다.

1268년 몽골이 일본에 사신을 보내 조공국이 될 것을 요구해 왔다. 니치렌은 이전에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지어 막부의 실권자 호조 도키요리(北条時頼)에게 보낸 바 있었다.

 

이 글에서 그는 조정과 국민이 사교(邪敎)를 믿기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졌으며, 다른 종파를 없애고 자신의 교리를 국교로 삼지 않는다면 결국 나라가 무너지는 위험에 처하고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될 것이라 주장했다.

 

몽골 사신이 오자 그는 자신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여기고 이 책을 막부를 비롯해 주요 불교 종단들에 보냈다. 이는 기성 불교계를 자극했고, 1271년 니치렌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감형되어 사도 섬에 유배되었다.

 

니치렌은 이런 역경조차 법화경 수행의 일부로 받아들였고, 유배지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포교를 계속했다. 이때 집필한 개목초(開目秒)에서 그는 고난을 극복하는 체험 자체를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법화 행자' 개념을 창안했다. 그리고 3년 후 영향력 있는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가마쿠라로 돌아왔다.

 

돌아온 후에도 니치렌은 막부에 몽골의 침략과 관련된 자신의 사상을 여러 번 간언했으나 끝내 수용되지 않았다. 그는 이에 분개하여 미노부 산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글을 쓰며 여생을 보냈다. 이때 쓴 주요 저작으로는 찬시초(撰時抄), 보은초(報恩抄)등이 있다.

 

오랜 고난으로 건강이 차츰 악화된 니치렌은 1282년 닛쇼(日昭), 니치로(日朗), 닛코(日興), 니코(日向), 닛쵸(日頂), 니치지(日持) 등 여섯 제자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숨을 거두었다.

 

니치렌의 종단은 이후 이 여섯 제자에 의해 확장되어 무사와 농민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일련종(日連宗, 니치렌종)은 일련종과 일련정종(日連正宗, 니치렌정종)으로 갈라진 후, 또다시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일련정종은 에도 시대와 근대를 거치면서 크게 성장하여 일본 불교의 대표적인 종단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일련정종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인 창가학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성장하여 300만 명 이상의 신도들을 거느리고, 1964년 일본 공명당을 창당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1253: 니치렌이 법화경을 근간으로 하여 거리 설법을 시작하면서 일련정종이 창시되다.

· 1260: 현실 세계에 불국토를 건설하겠다는 관점에서 쓴 입정안국론이 편찬되다.

· 1268: 몽골이 일본에 조공국이 될 것을 요구하는 사신을 보내다.

 

입정안국론-

일본 니치렌종[日蓮宗]을 연 니치렌이 천재지변과 사회불안에 의문을 갖고 연구하여 저술한 여러 책을 한데 묶은 불교서적이다. 니치렌이 38세부터 저술한 수호국가론》 《재난흥기유래》 《재난퇴치초등을 정리하여 당시 조정에 올린 책으로, 일본에서는 개목초(開目抄)》 《관심본존초(觀心本尊抄)》 《찬시초(撰時抄)》 《보은초(報恩抄)와 함께 오대부(五大部)’라 불린다.

니치렌은 신앙의 목적을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국가 전체의 개혁에 두고 당시 무사들이 지배하고 있던 정부에 건의안 형식으로 이 책을 올렸으나 오히려 묵살당하고 5년 동안 유배되었다.

 

본문은 주인과 손님의 대화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손님은 속인을 뜻하고, 주인은 승려, 곧 자신을 뜻한다. 내용이 진행될수록 손님이 주인의 뜻을 따르게 된다. 비록 무사정권에 묵살당하였으나 니치렌은 1268년 몽고군이 선전포고문을 보낸 것을 계기로 이 책에 간기(刊記)를 더하여 안국론오서(安國論奧書)를 썼다.

인간혁명-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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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ZaHMgc8Fjc 제 2권 - 지용- 주소창  클릭하면 볼수 있습니다..

 

https://youtu.be/Ule7rO1KZLQ 제 3권 -신생 - 주소창 클릭하면 - 볼수 있습니다.

https://youtu.be/J_uSOucjO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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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KTvvChE78s

 

https://youtu.be/V15z5CIbAnU

 

https://youtu.be/rvcrjJsAm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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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FcXJvCKszE

 

https://youtu.be/WizSpe-VwHU

 

https://youtu.be/KcI_xdRfiyc

 

https://youtu.be/gIbhbu6VkkY

 

소설 인간혁명 

 

https://youtu.be/WWssbcn1GK0

https://youtu.be/LswFjwbX0cs

https://youtu.be/mxqSkfdwRN4

 

https://youtu.be/b1hbAfNUiQ8

 

https://youtu.be/Hv3ZfcHgdJI

 

https://youtu.be/DeUKSHsh6oc

 

https://youtu.be/C-f093plr-o

 

https://youtu.be/B4vjvhssn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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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tGLeVMvGss

 

https://youtu.be/eFMiyFzIoq0

 

https://youtu.be/yZn5YopDKOM

 

https://youtu.be/DBzQ3cttuqw

 

https://youtu.be/3LpQZ-vXaM0

 

https://youtu.be/2s-xjmXXtkk

 

https://youtu.be/Hrp6Suwajx0

 

https://youtu.be/RH_1QJ6ULH4

 

https://youtu.be/MAVnUrj58N0

 

https://youtu.be/ojT9eXye5po

 

https://youtu.be/IE4_OXaZtiA

 

https://youtu.be/FhB82hiSlpA

 

https://youtu.be/2s-xjmXXtkk

 

https://youtu.be/m_oL5oVFWX4

 

https://youtu.be/Oi_aNl8kqr8

 

https://youtu.be/ojT9eXye5po

 

https://youtu.be/JkUpldKZB5U

 

신(新)인간혁명 

https://youtu.be/rxz3QwQCK6w

https://youtu.be/-m7yuuDlh64

https://youtu.be/ha0KFJNxOeA

 

https://youtu.be/NhlvCIqs6Ho

 

https://youtu.be/o3_dl5SrXlo

 

https://youtu.be/cTTNptqIV5s

 

https://youtu.be/eHeri0Vpovs

 

https://youtu.be/vu0A1MdkY3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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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_zUig_01WsE

 

https://youtu.be/oWPyRasx1S0

 

https://youtu.be/u9BXk0AagKQ

 

https://youtu.be/CnE8bVHwhvE

 

https://youtu.be/l3hAfbQwt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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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