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
[공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러나 울타리는 뽑지 말라.
성명(姓名) : 김 익 수 (金 益 銖)
안수명(按手名) : 모세
법명(法名) : 대정(大正)
별명(別名) : 모세.....
본관(本官) : 경북 의성(義城)
본적(本寂) : 경북 안동(安東)
출생(出生)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거주지(居住地): 양평군 양서면
연락처 : 010-5406-3846
이메일 : kisoo0352@ gmail . com
kisoo0352@hanmail . net
생애
1965년1월 25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이후 서울 은평 초등학교 입학, 3학년 무렵 황지중앙초등학교 전학,5학년 때 울산 방어진초등학교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같은 해 7월 대구 효목 고등공민하교 입학하여 2년을 다니고 중퇴하여 16세 때 서울로 상경하였다.
신문배달, 구두닦이, 직물공장, 봉제공장, 출판사, 등 전전하며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조직폭력집단에 들어가 20세 무렵나이트 클럽 간부 생활, 25세 때 스텐드빠, 등 유흥업소 대표, 생활을 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총무원장 서의현 큰 스님) 규정부장 ,조사국장 ,조사계장 선배님과 함께하던 시절, 강화 보문사, 서울 봉은사(성문스님 주지임명), 관음사(자승스님 주지 임명),,,등 비위 사찰에 대한 정화 활동에 앞장섰다.1991년 폭력행위등 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1994년 만기 출소 하였다.
1995년부터 유명 정치인들과 인연으로 건달 생활을 접고 정치판에 들어갔다. 1997년 경선, 대선 때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특보역임, 한나라당 종로지구당 기획실무를 담당하고 1999년 중학교의무교육추진운동본부를 출범하여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이 무렵 김대중 대통령시절 초대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원장이 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종로에 출마할 것을 대비하여 총괄 전략을 기획하였다. 결과는 이종찬은 낙선하였으며 한나라당 정인봉 변호사는 압도적 당선하였다.
필자는 2001년 중학교 의무교육을 관철( 김대중 정부)하겠다는 정부 발표와 함께 뒤돌아봄 없이 정계를 떠났다.
남한산성 자락에 움막을 짓고 7년간 수행하였다.시인 /작곡가 조운파님과 만남을 인연으로 서초동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에 출석하여 CBS 기독교 방송 ‘새롭게하소서“ 출연,CTS 방송 출연, 엔터테인먼트 ”Top People “을 운영하며 미사리 통기타 라이브 가수 후원및 음반 제작을 하였다..
2004년 청주 가경레져타운 1층 ,600평 규모에 ”로얄골드잭팟“ 일본식 빠징고 사업장을 운영 하였다. 노무현 정권 바다이야기 사건과 맞물려 게임 관련 법률 개정고시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청주 교도소에서 1년 3개월 간 복역 하였다.
2011년 4.27 보궐선거 당시 -현대 공화국-으로 명성이 알려진 울산시 동구에서 울산시민의 염원이던 "울산시민 혁명운동"을 벌였다.
청주에서 사업할 무렵 주변 후배들의 추천에 은혜를 베푼적이 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2013년 원수로 둔갑한 몹쓸자에게 무고를 당하였다. 당시 사건 담당검사 정진웅( 한동훈 검사에게 달려 들었던 인물)은"혐의없음" 처분과 오히려 고소인에게 '무고"죄를 물어야 함에도 상식에 어긋난 기질을 발휘하여 무리한 기소를 밀어붙였다.
안타깝게도 울산시민혁명운동 총괄지휘하느라고 법정 출석 기일을 놓치고 말았다. 1심 판사는 괘심죄까지 적용하여 징역 1년2개월 형을 선고하였다. 훗날 어쩔수 없이 구속수감후 6개월 만에 수원고등법원 유남근 부장판사님으로 부터 2013년 6월경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출소 후 사랑의교회 예하 독립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던 A목사로 부터 요청을 받아"사랑의전인치유쎈타'에 2년간 머물렀다.그렇지만 사랑의교회 성도 헌금으로 모아진 수십억원 이면에 얼룩진 부정비리를 알게 되었다. 결국 당시 뒤 빠구 없는 '주간현대 노인국 편집국장, 황성연 PD,' 집중취재, 등 합력에 힘입어 부정부패를 바로잡았다.
사태는 "사랑의전인치유쎈타' 법인 등기에서 A목사 일행을 척결하며 사랑의교회 오정현 담임목사가 법인등본에 이사장직을 취임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그후 ...현재까지 ” 진실한 사람과 거짓된 사람“ 을 알고자 "사람을 공부"하며 연구생활에 몰입중이다.
경력.
축구부 생활,보이스카웃,신문배달부.직물(織物)공장 ,출판사(出版社),봉제공장,구두닦이,막노동판 잡부,목공소,건축목수,조직폭력집단,유흥업소(룸살롱,나이트 클럽, 스텐드빠) 업주(業主),생수사업 (미원음료), 골프연습장, 한나라당 종로지구당 (地區黨)기획부장,1997년 대통령(大統領)후보 특보(특별보좌역),주택(住宅)건설업(建設業),부동산 분양(分讓)대행(代行)업,연예기획사,국내 최초 전국최대 규모 일본식 빠징코 오픈 게임장 사업,컨설팅 사업,밭 농사.....등 삶의 고난과 연단을 인생의 역경으로 삼아 종교(宗敎) 정치(政治)시사(時事)등 닥치는대로 논평(論評) 하면서. 생각해보면 참,, 별의 별 짓을 다하며 살고있다.
그래도 세상을 살아 보노라니 그중에 제일은 이유 없는 "나눔과 자비로움을 실천"하는 아낌없는 "사랑" 이며 어지간하면 "이해와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야만 이 세상에서 잘 사는 인생이라고 말하겠다.
(前)義務敎育推進國民運動本部長
(前)中學校義務敎育推進運動本部長
(現)韓國宗敎淨化推進委員長
(現)國際人權救助支援本部長
(現)韓國社會淨化推進委員
(現)人間革命文化硏究院長
학력.
은평 초등학교 ,황지중앙초등학교, 방어진초등학교, 효목성실고등공민학교,명지대학교 사회교육대학원...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을 다녀봤다.
인생에 가장 흐트러짐 없는 배움의 터전을 꼽으라면,성동구치소,영등포구치소,강릉교도소,안양교도소, 춘천교도소,청주교도소,,수원구치소...등 감옥(監獄)생활 약 4년8개월 세월이다.
나는 그곳에서 독서(讀書)와 역사(歷史)를 배우고 천지신명앞의 인간(人間)의 나약함을 배웠다.그러나 젊은 청춘이라 하더라도 3년이상 머물곳은 아니었다.
유년시절(幼年時節)은 삼강오륜(三綱五倫)과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고, 주자십회 (朱子十悔)를 배우고, 사서삼경(四書三經)은 배우다 말다 하였다.그리하여 나이가 들어서 마저 배웠다.
어른이 되면서 한문(漢文)을 좀더 완숙하고,법화경(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대승경전(大乘經典)의 이치를 배우고, 성경(聖經)을 배우고 익히며 그 행함을 다하려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가운데, 사랑의 교회와 제자훈련을 통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교회(敎會)의 본질(本質)과 예배당(禮拜堂)을 가려내는 분변(分辨)을 배웠다.
지금은 내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배운다 한들 다 못배우는 우리내 인생 아니던가, 이제는 이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배우며" 내 인생에 마지막 최후의 일보를 걸어가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 하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내 삶의 운명이라는 것을 생각한다.....!
종교 생활의 영향
할아버지는 경북 안동군 남선면 구미리에서 출생하셨다.할머니께서 대구 동화사에서 명주실을 풀어가며 불공을 드린 영향을 받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영숙(金榮淑) 께서 만주에 거주하시며 독립운동을 하셨으며 아버지께서도 할아버지를 따라 독립운동에 가담하셨다.
할아버지는 왜놈들이 휘두른 장칼에 자상을 입으셨으나 다행히도 목숨은 끊어지지 않으셨다.할아버지는 8.15 해방이후 대구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찰 공무원이셨다. 선친은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 통역과 수행을 담당하셨다. 경무대를 나와 경상북도 경찰국에 근무하시다 퇴직, 대구 비산동장을 지내셨다.
선친은 1965년 서울로 상경 민주공화당 당직을 맡으시며 서대문구 녹번동에 거주하였다. 이 때 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유년시절은 대한천리교 예배에 참석한 경험과 친구들과 함께 녹번 교회에 출석한 경험이 있다.
이웃집 친구 홍순이 엄마가 유명한 무당이 되었다. 마을에서 굿을 할 때마다 대문밖에 음식과 동전을 내 놓았는데, 십 원짜리 동전을 챙기는 재미에 친구들과 굿 구경을 다닐 때가 더러 있었는데 어느 날 대문 안쪽에서 동전을 가져가지 말라는 뜻이었는지 들고 춤추던 칼을 던져 내 발 앞에 떨어져 식겁한 기억이 있다.
중학교 무렵 대구 2군 사령부 무열대 교회에 다녔다. 그 무렵 현신애 권사님께 안수를 받은 후 권사님, 집사님들과 약 6개월간 매주 철야 기도에 참석 하였다.당시 사령부 교회는 넉넉한 예산이라 그러한지 성경책, 찬송가...등 교회서적이 새것으로 비치되어있었다.
가끔은 등걸이 가방에 성경책을 넣고 그 지역 일대에 천막 교회마다 가져다 나누어준 기억이 은혜롭다.
20대 무렵은 일본의 대표적인 종교 생활불교로 알려진 일련정종(日蓮正宗)에서 신봉하는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일명 법화경을 접하게 되었다.
묘법연화경에 귀의 한다는 뜻으로 남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을 일본어로 (나무묘호렝케쿄-)라한다., 독경을 할 경우 남표호렝케교로 불러지게 되는데, 이를 우리나라에서는 남묘호렝교- 라는 하나의 종교로 알려지고 있다.
첫번째 징역생활 3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날마다 법화경을 일독하며 동쪽을 향해 면벽 기도를 하였다, 금강경, 화엄경, 반야심경, 무량의경,,부모은중경, 등 경전을 읽게 된 것도 이 무렵 이었는데, 돌이켜보면 불경을 읽고 깨달기 위해 한문 공부를 더욱 열심히 익혀야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일 것이다.
작사/ 작곡가 조운파 선생님과 인연으로 사랑의 교회에 출석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 사찰을 찾아 그동안 보살펴주고 깨우침을 가르쳐준 부처님과 나를 지켜준 제천선신께 감사의 삼배를 드리고 기독교에 귀의 하였다. 남한산성에 하루만에 움막을 짓고 밤에는 주기도와 성경 봉독을 하며 7년의 세월을 보냈다.
두번째 징역 생활에는 성경책을 베고 자야 할만큼 성경에 대한 애착이 깊었다. 심지어 지난 날 형 과 아우로 알고 지내던 조계종단 유명 스님의 사찰에 기거하던 아내와 딸에게 하루도 쉼 없이 15개월간 보낸 편지에 온통 하나님의 말씀을 적어 보낸 편지지가 훗날 살펴보니 라면 박스 1 박스가 가득차 있었는데, 사실 불교 사찰에 보낸 내용치고는 양심머리 없는 내용에 불과했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만물의 섭리와 이치에 따라 행하였을 뿐이다.
지금에 내 심령은 성령을 좆아 가야 한다는 심정으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가끔씩 그 마음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악한 마음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느낀다. 고로 내 속에는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고려 태조 왕건의 장녀 낙랑공주와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김석의 후손 의성김씨는 대한민국에서 독립운동가를 제일 많이 배출한 집안으로서 조상들의 역사를 통해 그 혈통은 어찌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있다.
현재 블로그를 새롭게--- 업- 데이트 중입니다.
예전에 올려진 게시물 약 8백여점..... 시간나는 대로 다시 올려 놓겠습니다.그런데 시간과 여건이 어지간하지 않습니다. 이전 게시물 관련....방문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2011.4.27.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정경유착을 끊어야 겠다는 다짐을 갖고.. 내 걸었던 현수막, 당시 울산시는 물론 관할.선거관리위원회까지 발칵 뒤집어졌고, 현대중공업 간부인- 친구는 날마다 현대중공업 고위급 상사에게 불려갔다고 하소연 하였다. 초등학교 동창 친구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대의명분이 우선이었다.. 정몽준 회장과는 서울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륨에서 해마다 열리는 재경 울산 향우회 신년 하례회 장소에서 만나뵙고 당시 서로간 입장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상호간 원만히 화해했는데, 정몽준 회장님은 역시 사나이 답고 큰 인물 이셨다.
2006년 가봉공화국 봉고대통령께서 만해평화상 수상하고자 방한 할 무렵 봉고대통령 박상철 경호실장, 만해재단 (이사장 조오현 스님)김상동 감사의 은밀한 부탁에 의해 한국 기업 (주) 미담 대표로 활동하며 수억원을 날렸다.
그 당시 봉고대통령과 박상철실장, 만해재단 조오현 이사장과 한국의 체면을 위해 존경하는 노광우 교수( 대통령 경호실 전,수행부장)백봉현 코세스그룹 회장, 김환목 교수님...등 관계자 여러분들께서 많은 수고를 해주셨다. 하지만... 아직 은혜를 다 갚지 못하여 늘 가슴에 남아있다.
위 단체는 일명 동방 번개파 또는 전능신교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로 알려진 단체이다. 이 단체는 중국인들로 구성된 단체이며 일부는 조선족들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제주도에 귀국하여 난민신청을 한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그 가운에 일부는 투자이민 비자를 발급받아 한국에 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한국 땅에 거점을 확보할 초기에는 한국인 또는 탈북인들을 앞세운 외사국을 두고 외부 활동을 하였다. 이들 단체는 우리나라 초대형 청소년 유스호스텔 상당수를 인수하여 주거지로 합숙소를 전국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고있으며, 지금은 우리사회에서 주요 관찰 대상으로 주목 받는 단체이다.
성희, 동영이,상훈이,세성이,연희,혜영이,홍구. 인옥이,,,모두 어릴적 친구들이다. 횡성군 둔내면,,,축산연구소 어귀에서..,
1997년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치를 무렵이다. 그 당시 내 나이 32세 였다. 1997년 12월 18일 대통령 선거 투표 당일 오후부터 다음날까지 주인 없는 이회창 총재 구기동 자택에서 장 다사로 선배(이명박 대통령실 총무기획관)도 계셨는데, 이날 켄맥주와 함께 날밤을 지세웠다. 1999년 6월 홍준표 지역구 였던 송파갑 재보궐선거에 이회창 총재께서 출마하였다.당시 선거 전후 감찰에 따른 경과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청주에서 빠징고 사업할 무렵 시련을 겪으며 그 시절 자료를 몽땅 잃어버렸다. 그런데 수일전 누군가 이 영상을 보내 주었다. 영상을 보며 내가 맞는지 긴가민가 하였다. 세월이 제법 흘렀다. 정계를 떠나올 무렵은 큰 어른의 수양아들이란 호칭도 들려왔다. 감회가 새롭다. 2024년5월20일.....붙임,
인터뷰 영상= MBC -보도자료
부록- 보도자료...
"칼 잡았던 손에 성경 책 들고" (tistory.com) 사랑의교회 '우리지' 2001,8,19 제 197호
중학교 의무교육(무상교육)추진운동본부의 역사 (tistory.com)
하나님의 사랑이 방문자 가족 여러분께 언제나 함께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