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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잡았던 손에 성경 책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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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세 (金益銖) 2022. 10. 5.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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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튀기 위해 칼을 잡았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

오야붕(사장)의 눈에 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업소 간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10-01-18 01:35:36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직폭력배의 보스 김익수 성도(반포특별5다락방·37). 이제 그는 어둠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벗어 던지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는 신실한 신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서 있다. 유복한 가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남부러울 것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선친의 갑작스런 사업 실패와 뒤이은 소천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그의 나이 10살 때 일이다. 그 때부터 서울과 강원도 울산을 전전하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진학을 위해 등록금을 냈지만 끝내 진학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당시 형편으로는 도저히 학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단란했던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친의 소천 후 누나는 사고로 사망했고, 그로부터 얼마 후 두 형은 구속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14살 어린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 역시 순탄할 리 없었다. 

공장과 막 노동판을 전전했지만 어린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쥐꼬리만 한 몇 푼 안 되는 임금이 고작이었다. 살 길이 막막했다.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 길로 무작정 상경했다. 

 

살기 위해 처절한 투쟁을 벌였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멸시와 천대뿐이었다. 한창 부모그늘 밑에서 보호 받아야 할 어린 그로서는 감당하기에 벅찬 삶의 무게였다. 그러기를 몇 년.

배불리 먹기 위해 조직폭력배가 되다

올바른 가치관이 미처 형성되지 못한 18살 나이에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그에게 있어 무엇이 바른 삶인지, 무엇이 정의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돈이 필요했고 배불리 먹고 편히 잘 수 있는 집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영등포 일대의 유흥업소 간부들의 모습은 선망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부럽고 무조건 좋아 보였다. 앞뒤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는 그 길로 폭력 조직의 문을 두드렸다. 조직에서 튀기 위해 칼을 잡았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휘둘렀다. 오야붕(사장)의 눈에 들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업소 간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23살 때는 나름대로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드디어 그의 인생에도 서광이 비치는 듯 했다. 꼬붕의 생활을 청산하고 오야붕의 반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강동구로 진출해 일대를 장악하는 조직으로 성장해 갔다. 날이 갈수록 조직과 사업(나이트 클럽)은 번창해 갔다.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맛보는 성취감이었다.

 

그 무렵부터 불교계의 실력자들과 줄이 닿아 그들의 사주에 따라 사찰을 돌며 폭력을 일삼았다. 강화도의 유명사찰부터 서울시내 유명사찰 주지 임면을 둘러싼 갈등의 핵심에는 항상 그가 서 있었다.자연스럽게 불교계에서 입지를 넓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죄악의 결과로 얻은 달콤함은 그리 길지 않았다. 1991년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에 또 한 번의 파란이 닥친다. 수배 중에 검거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수형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3 년 간의 수감생활은 그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뒤바꿔 놓는다. 그 때 사귀고 있던 여자친구가 불교신자였던 관계로 교도소 안에서 불교경전(법화경)을 접하게 됐다.

 

법화경을 읽던 그의 마음속은 언제 부터인가 사회에 나간다면 총무원장이되어 불교를 개혁해야겠다는 터무니없는 욕정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공부를 위해 독방을 자청했다. 그리고 수감 생활 내내 법화경을 읽었다.

 

무려 1000번이 넘는 정독 끝에 법화경을 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뒤 이어 성경을 2번 반을 통독했다. 기독교 비판을 위해서였다. 그 이면에는 기독교에 대한 알 수 없는 적개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체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기독교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이 사회가 이렇게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원망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1994 5 25일 드디어 수감 생활을 마감하고 만기 출소한다. 그 길로 출가를 위해 친분이 있는 주지 한 사람을 찾았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암흑가로 돌아간다. 그가 수감 생활을 한 3년 동안 조직은 더욱 방대해져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인 9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한다. 

그의 아내는 당시 유흥업소를 경영하던 (?)살 연상녀 였다. 이 때부터는 다시 정치 실력자들과 알게 되며 정치 깡패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부업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이름만 대면 초등학생까지 알만한 정계의 거물들이다.

 

1997년 대선과 2000년 총선 때는 전략기획과 이들의 특별 보좌역을 맡았다. 그러던 중 그가 경영하던 업소에서 가수 생활을 하던 동생의 소개로 조대원(조운파) 집사를 알게 된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조운파 집사가 전한 예수님의 사랑

결국 그 둘은 만났고 그 자리에서 조 집사는 복음을 전했다. "선생님(조 운파 집사)과 함께 기도하고 신앙고백까지 했지만 신앙생활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집사와의 만남 이후 여자 문제가 생겼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눈치채고 자문을 구하기 위해 조 집사를 만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익수 성도는 그 길로 조 집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제 잘못은 생각지 않고 단지 아내와 선생님이 만났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거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주먹을 휘둘렀어요. 속된 말로 짓밟아 버렸죠. 그 결과 선생님 갈비뼈가 부려졌고, 선생님의 비명 소리를 들은 경비원이 달려오자 선생님은 아무 일 아니라며 돌려보내셨어요.

선생님은 고통 중에도 기도하며 눈물로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며 제게 사랑을 보여주셨어요. 가족들에게 조차 그 사실을 숨기고 혼자 입원하셔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달간 저를 위해 기도하셨어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김익수 성도의 심령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제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때 제 머리 속에는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한 저는 그 길로 아내와 함께 기도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김익수 성도는 그 때부터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해 노력했다.

혼자 집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가 하면 교회에 나와 말씀을 듣고 조 집사를 통해 말씀을 들었다. 성경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영이 맑아져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회개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며 천배 만배의 충성을 다할 것을 결심한다. "능력은 없지만 성령님께서 예비하신 대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일생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명예, 권력, 돈, 여자 등 세상 것은 아무 것도 사랑치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서 그의 삶은 180°변화되기 시작했다. 스스로 조직생활을 청산하고 3평 짜리 오두막 하나를 마련해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조직의 보스로서 살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초라한 삶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평안이 찾아왔고, 더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에게는 강원도에 주택과 과 땅이 있기에 쉬운 길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넓고 평탄한 길 보다는 좁고 험한 길을 택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위해 그 재물을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할 것을 다짐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때도 있었다.며칠씩 굶는 경우도 있었다. 보일러도 없이 스치로폴 한 장 깔고 세 번의 겨울을 보냈다.그리고 재작년 전기장판을 구해 두 번의 겨울을 보냈다. 때로는 차비가 없어 예배조차 참석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기쁨을 주셨다.골방에서 아내와 단둘이 설교 테이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말씀을 들을 때 더 없는 은혜와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추위와 굶주림에 몸서리치며 칼을 잡았던 그의 손에는 어느새 성경 책이 쥐어져 있었고, 그의 뒷 바지에는 항상 성경책이 꽃 혀 있었다. 과거의 가난과는 비교 할 수 없는 행복한 가난인 것이다. 비록 가난 하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사랑하는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그의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1년에 한 번씩 우리를 굶기셨어요. 하지만 입을 것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처음에 쌀이 떨어졌을 때는 목사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고 창피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지금은 생활비 10 만원만 있으면 족하다는 아내가 너무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 원망은 그리 오래지 않아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다.연단과 고난을 통한 순종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올 겨울 8일 간 수제비로 연명한 일이 있었어요. 수제비를 먹으면서도 너무 기뻤고 은혜로웠습니다. 연단과 고난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때였습니다."

 

연단과 시련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기회

 

김익수 성도는 연단과 고난의 세월을 통해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달았다. "성령님께서 구속하시고, 알려주시고, 인도하시는 과정에 느낀 것은 하늘의 것을 사모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사모해야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움막 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예전에 쓰던 앰프를 이용, 옥한흠 목사의 설교와 찬양을 방송하고 있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스스로의 몸가짐과 행실, 언행을 조심한다고 한다. 요즘 이웃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좋다고 칭찬이 자자하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모범 되고 절제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전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사랑으로 감싸고 좋은 말로 대하려 노력하다보니 세상적으로는 멀어질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하나님을 모르고 돌아가신 선친을 위해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계신 어머님과 동생이 하루 빨리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그는 새로운 꿈을 꾼다.세상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아동 복지 재단 설립과 하나님 에 대한 선교사업이다. 김익수 성도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하나씩 하나씩 준비하고 있다. 입양이란 미명 하에 팔려 가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법인 설립을 하기 위한 기초자료도 수집해 놓았다. 입양단체 관계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해외입양에 대한 실체도 확인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개의 꿈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그에게는 새로운 걱정이 하나가 생겼다. 얼마전 조대원 집사(조운파)를 도와 가수 음반 기획사 일을 시작하였다. 노래를 통해 하나님을 알리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지만 그 일로 기도 생활이 소홀해 질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 하나님께 모든 것을 회개하고 마음을 비울 때 진정한 평안이 찿아 왔습니다. 감히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 할 수는 없었다. 무엇인가를 구할 때는 영과 육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그런 만큼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구할 수 없었다. 요즘은 자신은 물론 주변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 역시 그들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구원해 주실 것을 간구 할 뿐이다.

 

김익수 성도는 요즘 옥한흠 목사( 사랑의교회)에게 언제 부 칠수 있을지 모르지만 매일 편지를 쓰고 있다. 언젠가는 한거번에 소포로 보낼 생각이다. 자신을 점검하고 새롭게 다짐하는 내용이 편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옥한흠 목사님을 신앙의 인도자" 친근한 스승, 때로는 형님처럼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지만 멀리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이고 멀리 있지만 형제같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 같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매일 편지를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옥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하시는 질책과 훈계를 너무 좋하 합니다. 편지를 쓰면서 옥 목사님이 제게 하실 질책과 훈계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시간이 제게는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체험에서 나오는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인도해 주셨고 저는 그 분을 섬겼습니다. 작은 연단과 시련의 시기도 있었지만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은혜로울 뿐입니다. 전에는 알 수 없었던 평안과 기쁨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를 메고 너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붙들고 죽을 각오로 그 분을 따를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영안을 열어주셨고, 사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기고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맡겼을 때 그분은 제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지금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지만 언젠가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닥쳐도 능히 이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이 저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제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고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악의 사슬을 끊고 예수의 제자 되기를 서원한 김익수 성도는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였다. 이제 그는 어린 시절 그렇게 불러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마음껏 부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칼을 버리고 피 묻은 손에 성경 책이 쥐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구속하시고 성령님이 인치셨을 때 그는 '어둠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었다.

 

 

 

                                                                             사랑의교회 <우리지>.  : 주명석 기자 2002.06.23   

 

 

옥한흠 목사ㅡ명설교

※'서기관보다 더 나은 의’ 우리의 인생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ㅡ꼭, 보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5CZHUOmRPmU- 설교 43분 내용-

ㅜㅜ

 

  https://youtu.be/yoVjHGUzFEg-설교 24분 내용(요약본)-

인간혁명문화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