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 선언에 대한 소견

카테고리 없음

by 모세 (金益銖) 2023. 6. 9. 04:22

본문

2022-03-21 00:12:50

 

[대통령 집무실 용산 시대 선언에 대한 소견]

 

1. ‘청와대’의 역사와 논란

 

원래 청와대 터는 경북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 밖의 후원(後園)에 해당하는 자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어영(御營)의 연무장(鍊武場)이나 과거장(科擧場), 또는 임금의 친경(親耕, 임금이 직접 경작) 장소로 사용되었다. 크게 보면 청와대 자리는 경복궁의 일부인 셈이다. 이 건물들은 일제 때인 1927년에 모두 헐리고, 그 자리에 조선 총독의 관저(官邸)가 건립되었다. 해방 후 미군정 시절에는 하지 중장(군정청장)이 관저로 사용하다가 1948년 정부 수립 후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다시 관저로 사용하면서 ‘경무대’라고 칭했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승만이 물러나자 새로 집권한 윤보선 대통령은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했다.

 

이후 청와대는 대통령의 집무실인 본관, 외빈 접대 시절인 영빈관, 비서진들이 근무할 수 있는 부속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단순히 대통령 관저 차원을 넘어 ‘권부의 상징’이 되었다. 이밖에도 청와대에는 녹지원 등 아름다운 공원도 조성돼 있으며, 매년 어린이날, 어버이날에는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그간 청와대를 놓고 논란이 많았다. 국민들과 유리된 ‘구중궁궐’이라거나 어떤 경우 ‘인의 장막’에 갇혀서 청와대가 마치 불통의 상징처럼 비판받기도 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 초기에는 늘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청와대 이전을 거론했으나 이를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밖에 청와대 자리가 풍수지리 측면에서 흉지(凶地)라는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풍수지리 전문가인 최장조 전 서울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청와대 터는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거나 신의 거처”라며 ‘흉지론’을 주장한 바 있다. 또 다른 풍수 전문가도 “북악산에 많은 바위가 풍수에서는 ‘살기(殺氣)’에 해당함으로 청와대 터는 좋지 않다”고 밝힌 바도 있다. 연유야 뭐가 됐든 간에 초대 이승만 대통령 이후 역대 대통령 대다수가 임기중, 혹은 퇴임 후에 비운의 겪은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조차 후보 시절부터 ‘광화문 시대’를 공약했었으니 ‘청와대 탈출’은 지금도 여전히 대통령의 희망사항이자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2. 용산의 지리적 연원과 역사성

 

서울 ‘용산(龍山)’의 어원은 지형 지세에서 기인했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의 지세 한 자락이 서쪽 인왕산-안산을 거쳐 만리재와 청파동 일대로 이어지는데 그 형세가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라고 해서 이 일대를 용산(龍山)이라고 불렀다. 다시 말해 원래 용산은 만리재 언덕과 효창공원 주변 일대를 말한다. 삼각지와 국방부 일대는 구한말~일제 때 개발됐는데 당시는 이곳을 ‘신(新)용산’이라고 불렀다. 요즘 얘기로 치면 신도시라고 할 수 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은 용산에 자리를 잡고 이 일대를 군용지로 수용해 개발했다. 남대문에서 한강에 이르는 한강대로도 그 무렵에 뚫렸다. 1910년 한일병탄 후 일제는 이곳에 조선군사령부를 주둔시켰다.

 

용산 일대의 외국군 주둔은 그 연원이 더 오래됐다.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이곳 용산에 주둔하였으며, 1894년 청일전쟁 때는 다시 일본군이 차지하였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 후에는 다시 주한미군의 본거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용산은 군사요충지라고 할 수 있다. ‘오욕의 땅’ 용산은 2003년 한미 정상의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 합의에 따라 비로소 우리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미군 부대의 상당수는 이전을 완료했거나 현재 이전 중이며, 그 한 켠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이미 들어섰다. 용산은 장차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에 따라 공원이 조성돼 시민들을 맞을 예정이다.

 

3.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대한 소견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오늘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후보 시절에는 ‘광화문 시대’를 공약했었으나 경호, 안보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당초의 계획을 수정한 셈이다. 이를 놓고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데 필자의 소견은 아래와 같다.

 

(1) 공약 이행

 

역대 대통령 가운데 다수는 후보 시절, 또는 재임 중에 대통령 집무실을 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청사 등으로 이전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물론 여기에는 경호, 안보, 경비 등 여러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행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윤석열 당선자 역시 후보 시절에 청와대를 국민의 품으로 돌려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취지는 “청와대의 공간적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자 함”이라고 했다. 즉,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과 ‘국민 소통’을 강조했다. 윤 당선자는 오늘 ‘용산 시대’ 발표를 통해 그 약속 이행에 첫걸음을 뗐다. 이를 둘러싼 제반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청와대 이전’ 공약을 유일하게 실천한 점에 대해서는 점수를 줘야 할 것이다.

 

(2) 비용 소요

 

오늘 발표에서 윤 당선자는 이전 비용으로 496억 원(기재부 산출)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일각에서 거론한 1조 원, 5000억 원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들은 이전 대상의 신청사 건립과 이사비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윤 당선자에 따르면, 대통령 집무실은 국방부 청사로, 국방부는 옆에 있는 합참 건물로 이전하고 다시 합참은 남태령 수방사로 이전할 경우 신청사 건립은 수요가 없는 셈이다. 원론적으로 말해서 선출직 공직자의 공약 실천은 비용 소요가 전제돼 있다. 한 예로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 사업’ 공약 실천에는 최소 22조 원이 소요되었다. 일개 지자체 청사 이전에도 수천억 원이 소요되는 판국에 역대 대통령들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500억원대라면 우리 재정 규모로는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추가비용이 더 소요된다는 주장도 있음)

 

(3) 안보, 경호 문제

 

대통령 집무실 이전 후, 또는 이전 과정에서 안보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최근 북한이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안보 상황이 위중하므로 그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우리 군의 안보태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긴급 대응이 가능토록 준비된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청와대 경내의 ‘지하 벙커’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점을 우려하는 지적도 많은 데 이는 용산 국방부 경내의 지하 벙커를 사용하면 된다는 분석도 있다. 만약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할 경우 이에 대한 대비책이 없어 고육지책으로 용산 국방부를 선택하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같은 지적에 대해서는 추후 새 정부가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경호 문제는 광화문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좋은 편이다. 우선 국방부 건물 가까이에는 민가가 없으며, 헬기장 등이 모두 영내에 있어 이동 시 안전 확보가 용이한 편이다.

 

(4) 주민 피해

 

용산으로 이전할 경우 용산주민들이 새로 겪어야 할 다양한 피해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용산 일대는 각종 개발 현장이 적지 않은 데 대통령 집무실 신설로 인해 이런 규제가 뒤따르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당선자는 “대통령 집무실이 이전하더라도 추가규제는 없다.”고 명쾌히 밝혔다. 물론 그 반대로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인해 유동 인구가 많아지면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진 않다. ‘용산 시대’의 대통령 관저는 인근 한남동 소재의 합참의장 공관, 외무장관 공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교통통제를 할 경우 관저에서 집무실까지 승용차로 3~5분 거리라고 한다. 대통령 출퇴근 등 이동 시에는 통신장애와 교통체증, 또 각종 집회 등으로 주민 불편은 어느 정도 예상된다. 따라서 대통령 경호에 만전을 기하면서도 주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5) 소통 문제

 

소통의 핵심은 언론과의 대화와 소통이다. 특정 행사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통령이 국민 개개인을 상대할 수는 없다. 대신 대통령은 언론을 통해 국민들에게 입장을 밝히거나 언론을 통해 여론을 경청한다. 청와대 동쪽 모서리에 ‘춘추관’이라는 출입기자실이 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 가운데 춘추관에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는 취임 초기를 빼고는 거의 없었다. 말로는 국민(언론)과의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직접 언론을 상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윤 당선자는 후보 시절에 “대통령이 되면 주 1회 기자들과 만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오늘 용산 시대를 발표하면서 “용산 대통령 집무실 1층에 프레스센터(기자실)를 설치해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그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소통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6) ‘오욕의 땅’

 

혹자는 근대 이후 100여 년간 외세가 지배했던 용산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것은 수치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곳이므로 오히려 국민 권력의 상징인 대통령의 집무실이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도 된다. 일제는 1926년 서울 남산 중턱에 일본 혼(魂)의 상징인 조선신궁(朝鮮神宮)을 건립했다. 현재 바로 그 자리에는 의열투쟁의 상징인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건립돼 있으며, 그 아래편에는 독립운동의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치욕의 역사는 오히려 밟고 일어서야 하는 법이다.

 

(7) 졸속 결정

 

윤 당선자의 취임식(5.9)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비록 공약사항이라고는 하나 이 기간에 대통령 집무실을 비롯해 관련 기관들을 이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 때문에 이번 결정을 졸속이라는 비판이 많은데 나름으로는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긴 하지만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는 윤 당선자의 말도 되새겨볼 만하다. 이런 지적에 대해 윤 당선자는 “일단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면 제왕적 권력의 상징은 청와대를 벗어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이전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좌절된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밝혔다. 한번 자리를 잡고 앉으면 털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결정은 윤 당선자 나름의 결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통령집무실 관련 조감도

 협조사항

윤 당선자의 ‘용산 시대’ 선언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 모두 비판적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속도조절론이 제기됐으며, 민주당은 졸속과 날림 결정이라며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충분한 시간적 여유 없이 다소 무리하게 추진한 점은 지적사항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 누구도 이행하지 못한 ‘만성적인 숙제’를 해결했는데 이에 대한 배려는 부족해 보인다. 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도 이 건을 추진했던 일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진영에 갇혀 다툴 일이 아니다”는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의 일갈은 귀담아들을 만하다고 본다. 이전에 따른 비용은 정부예산 가운데 예비비를 사용할 걸로 알려졌는데, 예비비 지출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윤 당선인과 문재인 대통령과의 긴밀한 상의와 협조가 절실하다. ‘청와대 이전’ 건을 둘러싼 논란은 오늘 윤 당선자의 ‘용산 시대’ 선언으로 일단락되었다. 여러 지적과 우려가 있지만 70년 된 권부의 상징을 옮기는 데 이 정도의 논란도 없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말해 ‘용산 시대’는 우려보다는 기대가 더 크다고 하겠다.

 

위 내용 정운현 (前)국무총리 비서실장님의 '페이스북' 글, 전문(全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