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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앞 애국 용사들의 투쟁과 파렴치한 사람들...<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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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세 (金益銖) 2025. 3. 3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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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평야를 알 수가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하늘의 넓이를 우물 크기로만 안다.' 

 

싸워 이기는 것은 쉽고 지는 것은 어렵다.국민변호인단 정신차려야

 

 김태권( 공수처 앞)권태훈(시청앞)분신한 동지의 명복을 빌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기원합니다.대통령께서 구속 수감된 이후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는 부산, 울산, 목포, 광주, 등 전국에서  애국청년들이 상경하고, 직장인 등 동지들이 모여들기 시작 하였습니다.

반국가 세력들이 헌재 앞을 장악할 경우, 이미 이재명의 민주당에 장악당한 방송,언론사 들은 24시간 연속 보도를 하며 마치 헌재 앞에 모인 사람들이 국민의 염원인양 여론 조장 방송을 할 것이 뻔하고, 헌법재판관 역시 착각에 빠질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떠한 경우에도 헌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습니다.

 

따라서 동지들은 평일,휴일 가리지 않고 밤 낮“탄핵무효와 탄핵반대”를 외쳤습니다. 특히 헌법재판관들 출,퇴근 시간 때에는 헌재 정문 앞은 발 디딜 팀이 없을 만큼 ‘탄핵반대“를 염원하는 동지들의 울부짖음은  한마디로 감동과 비통함 그 자체 였습니다.

 

더군다나 헌재를 장악하기 위해 불과 300미터 거리 성현공원에 진지를 꾸린 민노총 세력들은 집회 신고와 함께 열댓 개 천막과 편의 시설을 설치한 가운데, 밤낮 헌재 앞을 빼앗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무리를 지어 도발해옵니다.

 

민노총이 구축한 진지는 초저녁은 자기들만의 먹고 놀자 판입니다. 그러나 판이 끝나갈 밤 11시부터 새벽 1시경 헌재 앞으로 쳐들어오거나, 아침 8시경 헌재 출근 시간 때는 어김없이 안국역 1번출구 앞,또는 재동초등학교 사거리 쪽으로 처들어 옵니다.

 

헌재와는 300미터 거리이기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올 경우, 헌재 앞까지 수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들은 인솔자 몇 사람만 한국 사람일뿐, 동원된 세력들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인 또는 조선족이 틀림없없고 그들이 들고있는 깃대는 플라스틱이 아니라 쇠파이프로 만들었기에 실전에선 무기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면 헌재 앞은 헌법재판소 반경 100미터 이내에는 집회신고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헌재앞 동지들은 1인 시위 명분하에 투쟁을 펼치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천막 하나 설치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따듯한 커피 한 잔 끓을 수 있는 편의 시설 하나 설치 할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그래서 헌재 앞 노상에 제일먼저 둥지를 튼 전지영 동지 단식장을 중심으로 마찰, 충돌 방지와 질서유지를 명문으로 사실상 상황본부를 차렸습니다. 위치적으로도 헌재 정문 맞은편과 정문을 끼고 좌우를 살피고 판단하기에 적합한 장소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가 상황실장이니, 본부장이니 ,내세운 적은 단 한번 도 없습니다. 

 

단지 동지들은 서로 눈빝만 보아도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서로서로 배려하며 동지애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야간에 고생하는 동지들은 대다수가 젊은 청년들이며 이들가운데 일부는 유투버 청년들입니다. 

이에 비상식적이고 편파적인 경찰의 태도에 일일이 법과 논리에 따라 대응해야했고 많게는 하루에 열 댓 건에 달하는  크고 작은 도발과 태러 사건이 빈번이 일러났고 매번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 이었습니다.

 

테러에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면, 젊은 청년이 집단테러를 당해 흰 눈동자만 보인 체 맥없이 쓰러져 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곧 119 엠블렌스가 도착하고, 청년은 응급실에서 뇌진탕 진단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헌재 앞  상황은 매번 동지들의 숫자가 모자라 자리를 비울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리하며  병원까지 함께 동행 할 수가 없는 안타까운 지경이았고 이러한 사태는 빈빈히 일어났습니다.지금도 병원에 입원중이거나 통원 치료중인 동지들이 여럿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 국힘당 고위 관계자 그 누구도 헌재 앞에 나타나거나 투쟁에 동참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 때마다 그나마 대통령 법률변호인단에 긴급 상황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늦은 밤이던 이른 아침이든 염치불구하고 긴급상황을 전송하였습니다. 이후 청년들에게 잘 처리 되었다고 고맙다고 연락이 옵니다. 고맙다며 스타벅스  선물 셑트를 보내오는 동지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헌재 앞은 25시라고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마치고  헌재로 달려옵니다. 새벽까지 밤새 “탄핵반대”를 외치고 아침에 출근하는 동지들, 아침마다 보온병에 커피를 들고 와 나눠주며 온종일 외치다 밤늦게 귀가하는 중년 동지들, 그들의 마음은 오직 대통령 복귀를 바라는 “나라사랑”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실재 밤 10시 30분경, 낼 아침8시경 민노총이 쳐들어온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단식장, 정문, 재동초 앞, 인원 점검차 한 바퀴돕니다.  내일 아침 밀고 들어올 민노총을 막아낼 인원은 불과 10여명도 안 될 것 같습니다. 하는 수없이  그 시간 메가폰을 들고 순찰하며 동지들에게  이와 같은 사정을 알립니다.

 

안내 방송을 청취한 동지들은 두말하지 않습니다. 동지들은 지하철 막차를 떠나 보내고 밤을 지샙니다.  동지들 가운덴 직장인 부부도 있습니다. 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밤을 지샐 의양으로 사전에 준비해온 방한복도 없습니다.

 

겨우 추위를 막아 낼 것은 몇 개 남은 은박 비닐이 전부였습니다. 동지들은 은박비닐로 감싸고 또 감싸며 심지어 쓰레기통에 버려진 은박비닐까지 재사용해가며 추위를 견뎌냈습니다. 그나마 청년 유투버들 가운데 부부 애국동지인 '이아티비"의 헌신은 영원히 잊을수가 없을만큼 고마운 동지입니다. 

 

다음날 아침8시 20분 경, 민노총은 어김없이 안국역 사거리를 통해 쳐들어왔습니다. 이 날은 경비과 직원들이 인솔하듯 선봉에 나서 민노총과 함께 헌재 앞까지 처밀고 들어왔습니다. 

 

경찰은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며 그래서 그들을 인솔하였다는 핑계를 댑니다. 10여명 동지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막아내려 몸부림 첬지만 민노총 60~70 여명을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 이었습니다.

 

할 수없이 헌재 정문 담장 좌측 노상을 민노총에게 내주고 말았고  분통이 터졌습니다. 정말이지 기관총이라도 있었다면 모조리 쏴죽이고도 남을남한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일단 대통령 법률 변호인단에 긴급 상황을 전통한 후,  마찰과 충돌을 방지해야할 경찰이  오히려 충돌을 유발했다는 위법에 대해 스피커를 통해 따지고 책임을 물었습니다.

 

약 1시간이 지나 경비과장은 민노총의 해산을 명령했고, 2차 명령과 강제 해산을 경고하자 민노총은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헌재 앞은 이렇게 단 1회- 일부분 빼앗겼다 다시 회복하여 지켜온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 호남에서 경찰이 대거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헌재 앞 진입로를 차단하며 단식장까지 오고가는 통행을 제지했습니다.  이에 우리 동지들은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경찰은 게릴라 식으로 들어오는 일부 좌파 세력들과 마찰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핑계를 댔지만. 그 역시 빨갱이 분별,식별력은  경찰보다 우리가 더 뛰어 나므로  경찰의 전격 통재가 아니라 우리가 입구에서 선별해서 마찰을 방지해겠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경찰이 한 걸음 물러나고 우리동지들이 통행에 대한 자유와 도발에 대한 경계를 더욱 철통같이 지켜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간간이 우파인척 태극기를 들고 들어와 헌재앞 단식장 주변에서 행패 부리는 일들이 더러 있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동지들이 붐비는 장소이기에 매번 큰 충돌 없이 몸으로 밀어내며 경찰에 인계하곤 했기에 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전지연 동지 단식투쟁을 24시간 동거하며 지켜온 공선감 TV 위명순 단장으로부터 저녁 식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과 통장 잔고에 0원 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단 서둘러 긴급조치를 하였습니다.

김행 전장관께서 달려와 전지영 동지를 살피고 있다. 약 1시간후 전지영 동지는 응급실로 이송했다.

다음날 날일 밝자 마자 대통령법률 변호인단 윤갑근 변호사를 사랑하는 모임 “ 윤사모” 동지들과 김행 장관님께 이와 같은 사실을 알렸습니다.  제가 속한 '윤사모' 동지들은 십시일반이요, 김행 장관님은 소식을 받자마자 헌재 앞으로 달려왔습니다.

당시 전지영 동지를 돌보던 위명순 단장마저 식사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상황에 8일 째 소금 물 만으로 허기를 견뎌내던 전지영 국장의 심신은 오죽했겠는 가,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합니다.

 

김행 장관은 도착하자마자 거의 실신상태에 놓인 전지영 동지를 응급실로 이송했습니다. 119 구급대는 보호자 1명이 동승해야 한다는 말에 "김행 장관은 내가 보호자라며 주저없이 응급차에 올라탔습니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헌재 앞은 한순간 “전지영 힘내라”를 연호했습니다. 정말이지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동의 현장이었습니다.

 

이 날부터 김행 장관은 전지영 동지의 보호자뿐만 아니라  사실상 헌재 앞 동지들의 대모(大母)역할이 시작되었습니다. 헌재 앞 분위기도 달라졌습니다. 당일 오후부터 1차로 보온용 쿠숀 돗자리 30장이 들어왔습니다. 이날 이후 김행장관은 지금까지 수많은 동지들을 물심양면 보살피고 계십니다. 박민식 전 보훈부장관은 날마다 전지영 동지 곁에서  노숙을 합니다.

 

네이버에 "라이트 테라스" 카페 운영자도 찾아왔습니다. 야식, 우비, 은박비닐,등 지원물품이 속속들이 도착했습니다. 김행 장관이 헌재 앞 동지들과 함께 동거동락 하면서 국힘당 당협위원장들도 헌재앞을 찾아왔습니다.

 

탄핵반대 당협위원장 대표인 김선동 전국회의원은  제가 26년전 한나라당 "중학교의무교육추진운동본부장"을 역임 할 때 부터 알고 지내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헌재 앞은 애국동지들이 점점 더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구속 취소가 발표되던날 정치인들은 구치소 앞으로 떠났습니다. 그 다음날은 한남동 관저 앞으로 그래서 헌재앞은 여전히 늘상 지켜야 하는 동지들만이 씁쓸한 표정 가운데 미소를 띠며 헌재를 사수했습니다.

 

헌재 앞 단식장은 전지영 동지를 시작으로 포항에서 온 김영주 동지와 천만인 의병단 윤경숙 동지들이 1일 릴레이 단식 투쟁으로 늘상 약 2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관저로 돌아오시고 헌재 앞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당협위원장을 선두로 국힘당 국회의원들이 속속들이 자리를 잡은 가운데, 국민변호인단도 단식장 노상 한 복판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며 “기각”을 외치는 뜻이라 할 것이기에 그다지  먼저와 나중, 기득권, 텃세, 이런 것은 생각할 이유도 없기에  우리 동지들은  그 들 모두를 반가이 맞아 들였습니다.

 

사실, 수일씩 단식하는 동지들에게 국민변호인단이 필리버스터라며 떠들어 대는  고성능 스피커 소리는 뼈머디와 뇌가 울릴 만큼 고통스런 고문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이에 의의를 제기하는 동지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필리버스터  신청자가 없어 반복된 사람들이 같은 내용으로 매번 등장하더라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윤경숙 천만인 의병장,단식 과정에 조금도 흐트러진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을만큼 용맹한 분이다.

그런데 금일 급하게 이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민 변호인단‘의 파렴치한 행위를 도저히 묵과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직 치료와 절대 안정을 요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십수일 만에 노크북을 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 역시 국민변호인단 회원 으로서 어찌보면 누워서 침뱉기라 말 할 수있겠지만 상식과 경우에 어긋난 국민면호인단 헌재 앞 사람들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냉철히 지적하고자 합니다.

 

필자는 지난 17일 헌재 앞 천막을 치고 난 뒤, 자정이 넘어 동지들 몇 분과 식사를 할겸 이화동 사거리까지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식당이 일찍 문을 닫았고, 할 수없이 동대문까지 택시를 이용하여 식사를 마쳤습니다.

 

헌재앞 앞 주둔 상황은 실재 3~4일 동안 양치질 한 번 못하고 식사는 새벽녘 재동초 앞 세블일레븐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한 끼 떼우기가 일 쑤였고, 승용차에서 한 두시간 눈을 붙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날도 마침 화곡동에서 온 동지는 비도 내리고 어차피 지하철이 다녀야 할 시간까지 마땅히 쉴곳도 없고 하여 겸사겸사 동묘역 부근 찜질방 사우나로 향했습니다. 찜질방에 도착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식은땀이 나면서 가슴에 심한 퉁증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역류성 식도염 증상이 아닐까 생각했을 뿐, 축구선수 생활을 하였을 만큼 건강한 제가 급성심근경색이라고는 전혀 생각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참고 견디고 '겔포스' 한통을 다 먹으며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러나 맥없이 처지는 현상에 하는 수 없이 순청향 변원 응급실로 향했고 3월18일 "급성심근경색"으로 긴급 스텐스 시술을 받았습니다.

 

급성심근경색은  1시간 내 응급수술 받아야 함에도 장시간 버팀에 따라 심장 기능이 일부 훼손되었고 폐에 물이차서 평생 심부전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한남동 순천향 병원 중환자실을 나와 관찰실에 있는데 동지들로 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헌재 앞 상황을 들려줍니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 달걀 투척 사건이후 헌재 정문앞 맞은 편은 경찰버스로 차단벽을 쳐놓고 , 단식장 들어가는 입구는 경찰들이 출입증이 없으면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출입증이란, 국민변호인단 마크가 새겨진 하단에 스테프(STAFF)라고 새겨진 명찰이 없이면 출입을 통제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국민 변호인단이 명찰 70장을 만들었으며, 특정인들만 출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는 내용을 덧 붙였습니다.

경기도 분당에서 온 동지들이 내일 아침 쳐들어올 민노총을 막아내려 추이에 떨며 밤을 지샌다.

결국 그동안 헌재를 지키지 위해 정문 앞을 지키던 동지들과 재동초 앞 동지들 그리고 안국 사거리를 지키던 동지들은 지원물품이 보관되어있던 단식장 라인 출입은 전면 통제 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단식장 내 소형텐트를 치고 투쟁해온 동지들은 물론 "전지영,윤경숙,김영주 동지들의 단식투쟁"과 관련 된 동지들까지 경찰들로부터 출입을 제지당하는 험한 꼴을 당함은 물론  밤낮 일선에서 투쟁하던 동지들은 하루아침에 소외감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어떤 동지들은  국회의원 ,국민 변호인단,등이 들어오면서 결국 기득권들의 행태가  헌재 앞 이곳에서 나타내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하기도 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일부 청년들이 오다(지시)만 내려달라 당장 들어가서  불과 대 서너명인 국민변호인단을 전부 끌어내겠다고 합니다.

 

3월 25일 오후-응급수술 일주일 만에 순천향 병원을 나왔습니다. 귀가하는 길에 석동현 변호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간단히 씻고 헌재 앞으로 갔습니다. 역시 입구에서 국민변호인단 명찰이 없다는 이유로 통행을 불허했습니다, 그렇지만 마주나온 동지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아 경찰 제지를 뜷고 단식장으로 향했습니다.

헌재 정문 맞은편을 지키는 청년 동지 여러분,

엊그제 제가 머물던 순천향 병원에 다녀간 김행 장관님과 석동현 변호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석동현 변호사와 간담회를 마치고  동지들의 안부가 궁굼하여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만나는 동지 들의 불만은 이만저만 아니었습니다.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동지들은 나도 국민 변호인단 회원이다. 그런데 헌제에 들어온 국민 변호인단이란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기에 출입 명찰을 만들어 특정인들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오직 국가를 위해 투쟁하는 애국투사들의 마음에 이토록 큰 상처를 주는 것이냐며 그들의 정체성마저 의심하는 불만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동지들의 열분을 정리하면 ,김 원장이 병원에 가고 난 이후,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헌재 앞 분위기는 마치 국민 변호인단이 좌지우지하며 기득권 행세를 한다.작금에 행위는 국민변호인단 명찰이란 완장을 차고 애국동지들의 가슴을 죽창으로 찌른 반역 행위와 다름이 없다.

 

이에 일부 동지들은 충격을 받아 아예 헌재앞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 부터, 헌재 앞은 젊은 유투버들이 수십명이 있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는 국민변호인단의 행위가 더럽고 치사하다. 그래서 설령 출입 명찰을 준다해도 단식장 부근엔 더 이상  갈 일도 없고,  갈 필요조차 없다고 단언하는 동지,등 다양한 동지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 있었습니다.

 

퇴원후 이틀 동안 동지들을 만나며 두르 의견을 듣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이 문제를 그냥 모른척 넘어가야 하나, 어떡하나 고민했습니다. 별도로 태극기가 들어간 출입증을 만들어서 드려야 하나 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또한 한심한  생각에 불과했습니다. 헌재 앞은 국민 누구나 1인 시위가 가능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국민 누구나 통행 방문 가능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국민변호인단과 경찰 간 협의에 따라 단식장 출입증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에 불과했습니다.

 

고민 끝에 내부분열 현상도 막고, 마음에 상처받은 동지들을 위로하는 방법 가운데, 국민변호인단이 만들었다는 출입명찰을 만들어 동지들에게 배포하는 것이 가장 부작용 적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국민변호인단이 경찰에 이의제기를 아니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창신동 문구상가에 들러 명찰 150개를 구입하고, 제 홈피에 게시된 국민 변호인단 마크를 기대하며 명찰을 만들어 동지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마음 같으면 수천장 수만장을 만들어서  배포해 드리고 싶었지만 아직 제 체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일명- 출입증을 받은 동지들은 저마다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동지들인 것입니다. 헌재 앞 투쟁현장의 본산, 본부와 같은 단식장 라인을 십수 일 만에 다시 왕래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동안 소외된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기에 흐믓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재가 발생했습니다. 오늘 국민 변호인단 사무국장외 1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엔 서로 부드럽게 대화가 오갔습니다. 분명한 것은 경찰과 국민 변호인단과 협의상 출입명찰 70장을 허용했다는 것과, 필자가 만든 것은 "위조명찰이므로 전부 회수해달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면서 왜 지나 개나 위조 출입증을 나누어 주었냐고 다구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동지들을 지나개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굴러온 돌이 박힌돌 뺀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젊은 청년들이 밥상 다 차려 놓으니 이제 와서 밥 숫갈 올려놓고  그것도 모자라 상전 노릇까지 하는 국민변호인단 이라고 지탄하겠는 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자기들로부터 허락을 받아 필요한 명찰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참 기가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지경이 아닐수 없습니다. 옛말에 빨갱이 보다 빨갱이가 채워준 완장을 차면, 이웃 사촌 팔촌 할 것없이 모조리 처형했다던 지난날 역사가 절로  떠 올랐습니다. 

 

그리하여 석동현 변호사가 그렇게 처신 하라고 지시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석동현 변호사와 자기들은 별개라고 대답합니다. 그렇다면 석동현 변호사가 문제인지, 아니하면 헌재앞에 나와있는 그들의 정체성이 문제인지  정말 아리송한 것입니다. 

그래서 통화중에 숨이 찰만큼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니해도 급성심근경색이후 평소 120 이던 혈압이 90으로 떨어지고, 아직 폐에 물이 차는 바람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차는 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주장하며 생떼를 부리는 사람들로부터 울화가 치밀었고 "씨팔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냐"고 절로 내뱉었습니다.

헌재앞 단식장 노상에 들어 갈수 있는 출입증,사진= 필자가 만든 명찰이다. 국민변호인단은  위조 출입증을 만들었다며 배포한 명찰을 전량 회수하라고 겁박한다. 그야말로 제정신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누가 경찰에게 뭐라고 제보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국민 변호인단이 만든 것과 크기가 다르다며 일부 경찰에게 동지가 제지당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착한 경찰들이 많다.  이 명찰만 달면 제지없이 출입가능한 경우가 더 많다. 

국민변호인단 석동현 변호사께 묻습니다. 최근 헌재앞에 수시로 들락달락하십니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사실을 감지하고 계신 것인지, 아니하면 알면서도 수수방관 하시는 것인지. 아니하면  대통령 탠핵 반대를 위한 헌재앞 사수에 밤낮 수고하는 동지들에 대한 관심은 없고,  나만의  자기 정치를 하고 계신것인지에 대해 묻습니다.

한 가지 권면하겠습니다.  헌재앞 국민변호인단 관계자는  마치 이불속에서 "독립만세" 외치는 얼간이들마냥 사실상 진공상태라 할 수 있는  현재의 장소에서  고성능 스피커로  떠들어 대며 단식투쟁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 보다는 차라리 안국동 사거리로 나가서  외치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던한가 물어봅니다. 

 

제가 어지간 하면 사리분별, 상황판단하여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렇지만 한마디로 예절도 경우도 없고  자기들만의 정당화 합리화 방식으로 근본적 상식을 뭉게려는 국민변호인단의 몰염치한 사고 방식에 더 이상 묵과 할 수 없는 바. 지친 몸을 지탱하며 노심초사의 심정으로서 몇자 끄적였습니다.

아니, 이 사람들아 경찰하고 타협할 것을 타협했어야지, 이제와서 누구탓, 경찰탓 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개 같은 정치를 하든 장똘뱅이를 하든 '자아성찰을' 통해 건강한 정신상태를 회복해야만이 진정한 애국자라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 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을 마치며, 국민여러분 헌재 앞은  헌법재판소 진입로 두 곳 안국동 사거리에서 부터 재동초 사거리까지 애국동지들이 (애국청년 한 사람은 그제 결혼식인데 그 전날까지 헌재 앞을 지키다 다음날 신혼 여행을 떠났습니다.)밤 낮 쥐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자키고 있습니다. 고생 많은 동지 여러분들께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것이 진정 헌재 앞 애국 투사들의 열정과 감동의 순간들이다.

https://youtu.be/CuSrUAM2-I8  전지영 동지를 김행 장관이 응급실로 모셔가던날...

 

전지영 동지가 응급차에 실려가던 말든 국민변호인단은 바로 옆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신  떠들고 있다. 영상= 3.7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