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아버지는 뿌리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셨고, 집성촌에서 나고 자란 환경에서 집안의 제사는 물론이고 종친의 시향(時享) 등을 어릴 때부터 아버지 따라 경험하면서 자연스레 뿌리를 찾아가는 일에 익숙했습니다. 직계가족과 4대조까지는 그 이름을 알고 한자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필자는 교하(交河) 노씨의 33대손입니다. 본관은 파주의 교하이고, 교하는 파주의 옛 지명이면서 조선 광해군 대에 천도설이 제기된 곳이기도 합니다.
노(盧)씨는 3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우리나라 인구가 5100만명인 것을 고려하면 1%가 되지 않는 것인데 김(金)·이(李)·박(朴) 등의 대성은 아니지만 희귀 성씨도 아닙니다. 본이 제일 큰집인 광주(光州), 둘째인 교하, 풍천, 장연, 안동 등 9개입니다.
고시 공부한다고, 군(軍)에 있다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한참을 시향에 참석하지 못하다가 작년부터 벌초와 음력 10월 시제에 참석하였습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시조이신 수(穗)자 할아버지와 그 자식으로 9개의 본을 이룬 할아버지들을 위해 매년 음력 3월 15일 제사를 올리는데 전라 광주에 있는 삼릉단에 어제 가보지 못한 것입니다. 길은 멀어도 가장 선대의 뿌리를 찾아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터였습니다.
한식을 맞아서는 남일 고은리 선산에 성묘를 드리고 더 무성해지기 전에 잡풀을 제거하려고 약을 뿌리러 갔습니다. 너구리가 그런 것인지 묘 주변에 깊게 구멍을 내놓았고 두더지의 흔적도 있습니다.
후손들이야 가끔 들러 관리하는 것이지만 평소에는 여기 사는 동식물들이 주인이니 독한 풀약을 뿌렸다가 탈이 날까봐 걱정도 됩니다.
능선에 있는 고조할아버지의 묘 앞에서 내려다보니 신록의 풍경이 참 멋집니다. 작년 7월 6일자 타임즈포럼 `한여름에 흠뻑 땀흘리기'에서 등장한 국사봉을 마주합니다. 여기에서는 다른 곳이 멀리 훤히 잘 보이는데 밖에서는 선산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근 시루봉에 안긴 공군사관학교 역시 이러한 보안이 잘 갖춰진 여건에 들어선 입지라고 하는데 저희 선산도 꽤 괜찮은 터인 것 같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시골집 인근 가산리의 체화당사를 찾았습니다. 조선의 류성룡이 교하 노씨 4형제의 효성을 알고 찾아 선조로부터 체화당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은 충청북도의 기념물인 국가유산입니다.
체화서원이라고 하여 청주지역의 소중한 역사유적이 되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퇴임하시고 찾으셔서 더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신 집안 대부님의 안내를 받아 국사봉 자락의 선대께 성묘하였습니다. 노란 미나리아재비 꽃이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가장 윗대까지 올라 내려다보니 참으로 아늑하고 청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후손이면서도 국사봉을 자주 올랐지 조상님에게 인사드리는 것에는 소홀했다는 반성입니다. 불교에서 부처님의 가피(加被)라고 하여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어 중생을 돕는 것을 말하는데 조상님의 가피라는 말도 씁니다. 후손을 보호하고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작년 5월 11일자 타임즈포럼 `제비꽃, 제비 단상'에서처럼 제비꽃 만발한 조상님 묘 옆에서 살랑이는 봄바람에 조각구름을 보며 잠들었다가 저녁에 깨었어도 무사했던 것은 조상님의 가피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필자는 마음이 어려울 때 생명의 근원을 찾아갑니다. 금강, 미호강, 무심천의 발원지와 물줄기 여정도 그렇고, 나를 있게 한 뿌리를 찾아 인사를 드리는 것도 그렇습니다.
법정을 통해 정의를 갈구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우리 사회에서 옳고 그른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하고 판단이 어려운 세상입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귀한 후손이라고, 뜻한 바 해내라고 토닥입니다. 청아한 바람이 어깨를 어루만집니다.
뿌리란 식물을 떠받치고 땅속으로부터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는 기관을 가리킵니다. 반 만년 인류역사에 나 자신의 뿌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내 부모님의 부모님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와 시조의 조상을 거슬러 누구나 뿌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물론 조상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며 받드는 것은 우리 인간이 마땅히 행해야할 참된 도리라고 하겠습니다. 노동영 변호사의 정감이 넘치는 좋은 글을 읽고 공감을 느끼는바 글 주인 허락도 없이 옮겨 만인의 공간에 걸어두며 인간적인 성품이 풍겨나는 노동영 변호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