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SBS 스페셜에서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를 방송했다. ‘학전’은 대학로 소극장 이름이며, 김민기는 학전 대표다. 이 다큐는 앞서 3월 15일 학전이 33년 만에 문을 닫는 것을 계기로 마련된 듯하다. 문화예술계 사람들은 학전을 두고 ‘대한민국 문화예술계의 못자리’라고 부른다.
김민기 대표는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컬 작곡자이며 연출가로도 명성이 높다. 그의 재동초등학교 동창생인 가수 양희은이 불러 널리 알려진 ‘아침 이슬’은 그가 작곡했다. 그는 뮤지컬이 황무지이던 시절에 ‘지하철 1호선’을 학전에서 선보였는데 그는 학전의 터줏대감이었다.
개인적인 역량이나 사회적 역할을 볼 때 그는 문화예술계에서 앞자리에 서고도 남을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그리 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뒷것’이라는 별호(別號)가 그걸 웅변한다. 그는 빛나는 자신의 삶을 뒤로 한 채 무대 뒤에서 ‘뒷것’의 역할을 고집스럽게 자처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학전을 거쳐 간 수많은 배우들, 1951년생인 그에게는 한참이나 후배인 그들을 자신의 앞에 세우면서 ‘앞것’이라 불렀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뒷것’이라 부르며 후배들을 뒷바라지하며 키워냈다. 이 바닥의 사람들이 그를 따르고 숭앙하는 것은 그의 너른 품을 높이 사서다. 그는 지금 암 투병 중이다.
(*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2부는 28일(일) 밤 11시 5분 방송)
내가 알고 지내던 분 가운데 김민기 대표 같은 분이 한 분 계셨다. 2016년 5월에 타계하신 고 석규관 선생님이 꼭 그런 분이었다. 석 선생은 1936년 강원도 통천 태생으로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대만 유학을 다녀왔다. 그러나 집안에 월북자가 있다는 이유로 연좌제에 걸려 사회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할 수 없이 광부, 택시 운전사 등을 전전하다가 대만 유학 시절에 익힌 중국어 실력을 살려 중국어 강사로 나섰다. 중국어가 제2외국어이던 시절 석 선생은 한때 노량진 학원가에서 명강사로 통했다. 독특한 교수법과 특유의 입담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특히 강의 끝에 촌철살인의 ‘10분 시국담’은 수강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선생은 평소 모임에서 “나라의 기초는 교육에 있다”고 역설하곤 했다. 사정이 되면 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하는 게 평생소원이셨으나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말년에 중풍으로 쓰러져 한동안 고생하신 데다 생활고까지 겹쳐 힘겹게 사셨으나 그 의지와 기백은 한시도 굽히지 않으셨다.
선생은 ‘셋넷’이라는 자호(自號, 스스로 지은 호)가 있었다. 후배들이 앞에서 ‘하나! 둘!’ 하면 선생은 뒤에서 ‘셋! 넷!’ 하면서 뒷심 노릇을 하겠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라고 하셨다. 배움이나 의기(義氣) 면에서는 누구와 견줘도 별 부족함이 없었으나 선생은 항상 뒷자리를 자처했다. 내달이 선생의 8주기다.
(* 아래 글은 선생이 타계하신 후 제가 페북에 올린 글을 한겨레에서 제 동의를 받고 전재(2016.5.23)한 것입니다. 선생은 한겨레 창간 주주이자 은평구 지국장도 지냈습니다)
※위 글은 존경하는 정운현 선생님 페이스북 문장을 그대로 옮긴 글 입니다. 선생님의 뜻 깊은 마음의 글을 읽고 "인생은 아름다운 창작 활동이며 인생보다 어려운 예술은 없다."는 생각을 더 하였습니다. 삼가 석규관 고인의 명복을 빌며, 현재 암 투병중인 '학전 대표 김민기 대표님의 쾌유를 기원 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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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오른쪽 셋째가 고석규관 선생.
김민기 학전 대표가 김광석 추모비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극작가 폴커 루드비히, 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흉상 앞에 앉아 있다. 학전 제공
3월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간판 철거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