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승패는 뻔했다. 보궐선거는 원래 집권당의 무덤이다. 더구나 현직 대통령 부정 평가가 60%에 육박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한 자릿수 차이 패배면 선전이라고 예상했는데, 역대 최고 사전 투표율을 보고 그것도 어렵겠다 싶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사전투표를 많이 하는 쪽은 진보 좌파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2022년 3월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번 선거에 대해 유일한 관심은 윤석열 대통령이 패배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였다. 대통령과 통화했다는 외부 인사는 “많이 낙담하고 있더라”고 했다. 취임 이후 그렇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처음 들었다는 것이다.
참모 중 한 사람은 “대통령이 선거가 잘될 수 있다고 기대했던 모양”이라며 “그런데 너무 다른 결과가 나오니 당황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이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바랐다는 점에 오히려 놀랐다고 했다.민심을 몰랐고, 여권 내부 소통도 안됐다는 징표이기 때문이다.
여당은 일찌감치 이번 선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거 의미를 축소하거나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 방안도 검토했다. 여당 소속 구청장이 비밀 유출 유죄 판결을 받아 보궐 선거 원인을 제공한 터라 핑곗거리도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사면 조치와 재출마 독려로 분위기를 몰아갔다. 여당은 대통령 지침에 따라 180도 태도를 바꿨다. 지도부가 총력 지원에 나섰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야당 지지층이 “본때를 보이겠다”며 투표장에 몰려나왔다는 게 현장 사람들 얘기다. 대통령이 승산 없는 선거판을 키워서 곤경을 자초한 셈이다.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나라 위상을 끌어올린 업적을 평가해주지 않은 표심이 야속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공(功)에 박수를 보낸 국민들조차 고개를 젓게 만든 과(過)도 만만치 않았다.
대통령 또는 김건희 여사와 “어떤 사이냐”를 묻게 만드는 인사(人事), 이준석 전 대표와의 결별은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나경원, 안철수까지 폭력적으로 내치며 억지로 밀어 올린 김기현 체제, 홍범도 흉상 철거의 정당성을 주입하려는 이념 잣대 등이 지지율을 깎아 먹었다.
투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한다. 17%p 차 여당 완패는 대통령이 한 일에 대한 채점이 아니라, 대통령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반감의 산물이었다.
대통령은 “당정 소통을 강화하라”고 했다. 국민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대통령의 이런 지시가 아니라 자신부터 달라지겠다는 다짐이다.여권 개편으로 그 약속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에게싫은 말도 할 사람을전면에 등장시키면 된다. 그런 불편한 선택을 해야 국민들이 “대통령이 바뀌려 하는구나”라고 기대한다. 꽁꽁 얼었던 민심이 그때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여당은 임명직 당직자들이 모두 사퇴하는 것으로 보선 심판에 응답했다. 물러나고 들어 온다는 당직자들이 누군지 국민들은 모른다. 관심도 없다. 김기현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김 대표가 자신의 위상과 처지를 착각하고 있다는 게 국민 반응이다. 이렇듯 현 체제를 추슬러서 총선을 치르겠다는 게 대통령 방침인 듯하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청와대 시대를 마무리하겠다.” 20대 대선 선거운동 첫날이었던 작년 2월 15일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의 메시지였다. 집권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상징하는 청와대를 떠나겠다는 것을 출정식 화두로 삼았다.
윤 대통령의 집무실 이전 결심을 이해하고 지지했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가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청와대의 구중궁궐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신념대로 새 정부는 취임 첫날을 용산 집무실에서 맞았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공간적 거리가 가까워지며 접촉 횟수가 늘어났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의사 소통이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에게 ‘59분 대통령’이라는 탄식조의 별명이 생겼다. 한 시간 회의하면 대통령이 59분 동안 혼자 얘기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는 대통령이 화내며 고함친다는 얘기가 자주 들려온다. 그래야 참모들이 움직인다는 게 대통령 판단이라고 한다.
대통령의 강한 자기 확신은 상대방 입을 닫게 만든다. 그래서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 눈치만 살피다 성난 민심이 타오르는 보궐 선거판에 볏짚을 지고 뛰어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 안 하려고 청와대를 탈출한다더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제왕적 국정 운영을 하는 역설을 목격 중이다.그래서 너무나 궁금하다. 이럴 거면 무엇 때문에 집무실 이전에 그토록 집착했던 것일까.
김창균 기자 = 1994년부터 3년간 워싱턴 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1997년 복귀한 이후 계속해서 정치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정치 사회부장 및 편집국장을 거친 뒤 현재는 논설주간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5년 이후 '김창균 칼럼'을 정기적으로 집필 중이며 복잡한 현상을 가급적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기자로 알려진 인물이다.